한국도 퇴직연금을 국민연금처럼 한데 모아 전문적으로 운용ㆍ관리하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논의가 본격화됐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2% 수준인 수익률을 끌어올리자는 취지다.
20일 국회와 정부 등에 따르면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는 퇴직연금 제도 개편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정부도 최근 국무회의에서 ‘2026년 경제성장전략 주요 골자’에 퇴직연금 기금화 추진 등을 포함했고,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등 제도 개선 권고안을 연말까지 내놓기로 했다.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는 이재명 정부의 123대 국정과제에 포함된 퇴직연금 강화의 주요 내용 중 하나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전문적인 역량을 갖춘 수탁법인(전문기관)이 근로자의 퇴직연금을 모아 운용하고 그 수입을 가입자에게 배분하는 방식이다. 퇴직연금을 국민연금공단 같은 곳이 굴려준다고 보면 된다. 현재 한국의 퇴직연금은 근로자 개인이 직접 금융회사와 계약을 맺고 투자 상품을 선택하는 계약형으로 운영되고 있다.
퇴직연금 개편 논의가 나오는 건 저조한 수익률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431조7000억원으로 1년 새 12.9%가 불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의 5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2.86%로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의 82.6%(356조 5000억원)가 예금 등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는 게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주식 등에 투자하더라도 전문성이 낮은 개인이 직접 상품을 운용하다 보니 장기ㆍ분산 투자가 어렵다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정부와 여당 내에서는 이런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의 핵심 카드로 기금형 제도 도입을 꼽고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의 모범사례인 호주는 퇴직연금의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이 6.4%(24년 상반기 기준)를 기록했다. 한국 퇴직연금 10년 수익률(2.31%)의 3배 수준이다. 한국도 지난 2022년 3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도입된 기금형 퇴직연금인 ‘푸른씨앗’은 지난해 수익률이 6.52%를 기록하는 등 양호한 수익률을 내고 있다. 정부는 특히 개인이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의 경우 기금형 도입의 실익이 크다고 보고 있다.
퇴직연금 기금화는 이재명 정부의 핵심 과제인 자본시장 활성화에도 중요한 과제다. 자본시장연구원 남재우 연구위원에 따르면 2040년이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최소 1172조원은 넘어서게 된다. 다만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된 퇴직연금 자금이 전체 적립금의 1.6%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비율이 국민연금의 자산 배분 수준(14.8%)까지 오르면 국내 증시에도 유동성이 공급될 수 있다.

오기형 연금특위 더불어민주당 간사는 “한국 퇴직연금 대부분은 원리금보장상품에 있는데 이런 자금을 국민연금처럼 장기 분산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는 게 기금화의 핵심”이라며 “분산투자를 통해 한국 자본시장에도 자금이 유입되면 유동성 면에서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넘어야 할 과제도 많다. 먼저 운용 중 손실을 보면 받는 연금 액수 역시 줄어들 게 된다. 일본은 2012년 연금 전문자산운용사인 AIJ 투자자문이 허위로 높은 수익률을 내세워 수탁법인들로부터 자금을 끌어모은 후 고위험 투자를 하다 원금의 90%인 1377억엔(약 1조3400억원)의 손실을 봤다. 연금 운용사들의 전문성과, 이를 제대로 감시하는 관리ㆍ감독 체계가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 등 기존 퇴직연금 운용사들도 반대도 넘어야 한다. 수탁법인을 민간 금융기관으로 할지, 국민연금 같은 공공기관으로 할지 등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성주호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금형의 안착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자산 운용이 가능한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역량을 가진 자산운용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세종=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