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 초안도 척척…토종 법률AI, 두달새 20% 성장

2025-11-09

인공지능(AI)이 로펌의 업무 방식도 크게 바꾸고 있다. 책상 위에 판례집을 쌓아두고 밤새 자료를 찾던 신입 변호사들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를 AI가 대신하고 있다. 변호사들은 이제 모니터 앞에서 AI 리서치 툴을 띄워놓고 실시간으로 법령을 검색하고 문서를 작성한다. 며칠씩 걸리던 작업이 몇 분 만에 끝난다는 게 현장의 이야기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그동안 ‘어쏘(저연차) 변호사’가 맡아온 문서 초안 작성, 판례 검색, 법령 정리 등 반복 업무를 AI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법률 플랫폼 ‘로톡’으로 알려진 로앤컴퍼니가 지난해 내놓은 AI 법률비서 ‘슈퍼로이어’를 쓰는 법조인·예비법조인 숫자만 봐도 그렇다. 지난해 7월 출시한 이 서비스는 올 8월 가입자 수가 1만 5000명이었는데 지난달 1만 8000명으로 늘어나며 두 달 만에 20% 증가했다. 국내 변호사 숫자가 약 4만 명인 점을 보면 가입자 수가 상당한 수준이다.

슈퍼로이어를 포함한 법률AI 서비스들은 채팅창에 사건 개요나 쟁점을 입력하면 관련 법령, 판례, 행정규칙, 유권해석 등을 종합 분석해 결과를 제시한다. 단순히 검색 결과를 보여주는 수준이 아니라 변호사의 요청에 맞춰 서면 초안까지 자동으로 완성한다. 예를 들어 “근로계약 해지 사안에서 부당해고를 인정한 판례를 찾아줘”라고 입력하면 관련 판례의 핵심 요지를 정리해주고, “이 사건의 소장 초안을 작성해줘”라고 하면 실제 서식에 맞춘 초안을 몇 분 만에 완성한다. 또 AI가 제시한 답변의 근거를 다시 확인하는 기능을 더해 잘못된 정보나 ‘환각(hallucination)’이 생길 가능성을 크게 낮췄다. 업계에서는 “이용자가 늘어나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기술의 정교함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이 같은 AI 도입은 변호사 업무 방식을 대거 바꾸고 있다고 한다. 우선 사건을 단독으로 처리하는 변호사들은 문서 요약이나 판례 정리에 들인 시간이 크게 줄면서 업무 속도와 정확성이 함께 높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복잡한 사건의 구조를 파악하거나 유사한 판례를 찾는 과정도 한결 수월해졌다.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전문 분야 밖 사건을 맡으면 관련 법령을 새로 검토해야 하는데, AI가 이 과정을 대신해주니 훨씬 빠르고 정확하다”며 “법리 구조를 잡는 데 하루 이상 걸리던 일이 지금은 몇 시간 만에 끝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하도급 계약 해지 사안에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판례를 요청했더니 관련 판결문과 법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해줬다”며 “기존 검색보다 빠르고 실제 자문서 초안에도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완성도가 높다”고 전했다.

법조계에서 AI를 대거 도입하는 것은 거대한 흐름이다. 글로벌 정보분석기업 렉시스넥시스에 따르면 미국 대형 로펌의 53%가 이미 사건 처리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톰슨로이터 연구소 조사에서도 영미권 기업 법무팀의 59%가 “비용 절감을 위해 로펌의 AI 활용을 원한다”고 답했다.

AI 도입과 맞물려 로펌에서는 저연차 변호사 채용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국내 10대 로펌의 신입 변호사 채용 인원은 2022년 296명에서 2023년 278명, 2024년 255명으로 감소했으며, 올해는 227명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예전처럼 신입을 대규모로 선발해 ‘키우는’ 방식보다 즉시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직을 선호하는 추세다. 실제로 업계 10위권인 법무법인 동인은 2년 연속 신입 변호사 채용을 중단했다.

AI를 변호사를 대체하는 기술로 보기보다는, 법률 서비스의 효율성과 품질을 높이는 보조 수단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방대한 자료를 빠르게 분석하고 관련 법령과 판례를 정리하는 데에는 강점을 보이지만, 사건의 맥락을 해석하거나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에서는 여전히 변호사의 경험과 통찰이 필수적이다. 인수합병(M&A), 벤처캐피탈(VC) 자문, 대규모 분쟁처럼 고도의 해석과 책임 판단이 요구되는 영역은 인간의 역할이 여전히 크다는 평가다.

이와 함께 제도적 보완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변호사가 내부 업무용(B2B)으로 AI를 활용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AI가 일반 소비자에게 직접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B2C)는 법적 근거가 불명확하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직역 침해 우려가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