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이웃일본이 읽은 우리 마음, 우리가 읽은 우리 마음

2025-05-15

어떤 책으로 한국 읽어냈는지

한·일 지식인 140명 답변 모은

‘한국의 진선미 3부작’ 완결편

일본 필자들 ‘사회성’에 주목

‘소년이 온다’ 추천 가장 많아

“일본 소설이 잃은 ‘영혼’ 담겨”

일본의 지한파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 교수는 2013년 야심찬 기획을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 지식인 140명에게 ‘당신은 어떤 책을 통해 한국의 지를 알게 되었나’라고 물은 뒤 그 답변을 모아 책으로 묶어내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로 2014년 일본 출판사 쿠온에서 <한국의 지를 읽다>가 출간됐다. 지난해에는 백영서 연세대 교수가 합류한 <한국의 미를 읽다>가 출간됐고, 이번에 <한국의 마음을 읽다>가 나오면서 ‘한국의 진선미 3부작’이 완결됐다.

한국의 마음을 읽다

노마 히데키·백영서 엮음 | 박제이 옮김

독개비 | 740쪽 | 3만5000원

<한국의 마음을 읽다>에는 필자 122명(한국 측 47명·일본 측 75명)이 참여해 300여권을 추천했다. 필자들은 대부분 문학, 예술, 출판, 저널리즘, 학문 분야 종사자들이다.

일본 필자들의 추천도서는 일본인이 생각하는 ‘한국의 마음’이란 무엇인가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대체로 문학 서적의 비중이 높다. 여기에는 대체로 두 가지 사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내면을 다룬다는 점에서 ‘마음’이라는 키워드와 가장 잘 묶이는 분야는 문학일 수밖에 없다. 지난 10여년 사이 일본 서점가에 가장 활발하게 소개된 분야 중 하나가 한국문학이라는 것도 문학 서적 비중이 높은 이유일 것이다.

대다수 일본 필자들이 한국문학의 특징으로 꼽는 것은 ‘사회성’이다. 일본 모델 겸 작가 마에다 엠마는 “내가 생각하는 한국문학의 매력은 이웃의 작은 목소리,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었던 작은 이야기에 계속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큰 사회 문제나 분노와 아픔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마에다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를 추천했다. <소년이 온다>는 일본 필자들이 가장 많이 추천(3명)한 책이다.

작가 고바야시 에리카는 <한 명> <떠도는 땅> 등 김숨 작가의 소설만 세 권을 추천했다. <한 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는 민주항쟁 중 죽은 인물의 운동화를 복원하는 미술 복원사에 대한 이야기다. <떠도는 땅>은 1937년 소련 당국이 고려인 17만명을 소련 극동 지역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그는 “김숨의 흔들리지 않는 진지한 태도와 역사적 사실과 현실을 마주하는 자세”에서 깊은 감동을 받는다며 “언제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그 모습에 나는 줄곧 외경심을 품고 있다”고 말한다.

문예평론가 나카마타 아키오는 천명관의 작품 <고래>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추천하면서 “한국 현대소설에는 일본 소설이 잃어버린 ‘영혼’ 같은 것이 여전히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4·3항쟁을 다룬 재일 작가 김석범의 7권짜리 장편 <화산도>도 빼놓을 수 없다. 일문학자 다케우치 에미코는 “이때 도민을 학살한 것은 조선의 경찰과 군대, 우익단체인데, 이들은 일본의 식민지 시대 체제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일본은 4·3항쟁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일본 독문학자 마쓰나가 미호는 “한국문학 작품에서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식적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한다”고 평가한다.

일본 필자들이 역사나 사회의 무게와 정면 대결하는 작가들만을 한국 현대문학의 전부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소설가 나카지마 교코는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과 김애란의 <비행운>을 두고 “한국문학의 무겁고 다소 어둡다는 고정관념을 훅 날려버렸다”고 쓴다.

일본 번역 대상을 세 차례나 받은 한국문학 전문 번역가 사이토 마리코의 선택도 특기할 만하다. 그는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한 말씀만 하소서> <부처님 근처>를 추천했다. “박완서에게는 한국문학의 모든 것이 있다. 한국인이 지닌 희로애락의 구석구석을 이토록 생생하게, 강렬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써내려간 사람은 없으리라.”

일본 필자들의 문학 분야 추천서 목록은 박경리의 <토지>에서부터 황정은의 <연년세세>와 강주룡의 <채공녀>, 이슬아 작가의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일본 내 한국문학 독자들의 폭이 두껍다는 방증이다. 인기 드라마 원작 소설인 <옷소매 붉은 끝동>이 중복 추천을 받은 데서는 일본 내 대중문화 ‘한류’의 인기를 엿볼 수 있다.

반면 일본 필자들의 비문학 분야 추천서 가운데 당대 한국사회의 현실을 다룬 국내 사회과학 서적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편집자 미즈시나 테츠야는 1974~1980년 일본인들에게 한국 정치 현실을 알린 <한국에서 온 통신>, 이어령 전 장관의 <축소 지향의 일본인>, 문화심리학자 한민의 <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을 추천했다. ‘한국의 마음’과 관련해 조선 백자나 ‘한’을 소재로 한 책을 추천한 일본 필자들도 더러 눈에 띄는데, 현대 한국 사회의 복잡한 내면과는 거리가 느껴진다.

당연하게도 한국 필자들의 추천작들은 당대 한국 사회의 현실에 훨씬 더 밀착해 있다.

소설가 백민석은 주거불평등 문제를 다룬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산업재해로 사망한 고등학생들의 이야기인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차별 문제에 대한 인류학적 성찰인 <사람, 장소, 환대>를 추천했다. “이 사회의 누가, 특권층의 노예로 살라고 자식을 낳아 기르겠는가. 이 비극적 퇴보를 한국인이면 누구나 느끼고 있기에, 이미 오래전부터 특권층이 아닌 한국인은 결혼과 출산을, 가족의 형성을 포기하고 있다.”

소설가 김연수는 조선 세종 때 문인 강희안의 문집 <양화소록>을 추천했다. 정치 이야기 대신 식물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다. 작가는 ‘한가하게 꽃이나 볼 때인가’라는 항변을 예상이라도 하듯, 설명을 덧붙였다. “(강한 마음이 아닌) 보통의 마음에게는 현실의 악과 부조리를 제대로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한가롭게 꽃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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