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안 쓰면 연금 더 많이 준다고? SF 거장이 상상한 독특한 세계[BOOK]

2025-05-16

절대 진공 & 상상된 위대함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정보라 옮김

현대문학

스타니스와프 렘(1921~2006)은 폴란드 SF의 거장이다. 냉전 시대에 동구권에만 알려지다가, 1972년 타르콥스키가 영화화한 '솔라리스'(원작은 1961)가 국제적 명성의 기폭제가 됐다. 한국은 1990년대 초부터 SF 번역가들이 중역으로 소개해 왔다. 폴란드 문학 전공자들이 원전 번역하는 것이 확립된 것은 2020년대부터다.

이 책은 존재하지 않는 책들에 대한 서평과 서문을 모은 책이다. 『절대 진공』(1971)은 서평집, 『상상된 위대함』(1973)은 서문집이며 이번에 합본으로 나왔다. 렘은 이 계열의 ‘작품’들을 1980년대까지 집필해 왔다.

존재하지 않는 책에 대한 서평은 16세기 라블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형식은 풍자와 패러디에 극히 생산적이다. 18세기 스위프트, 19세기 칼라일 등 영국인들이 즐겨 사용하다가 20세기 보르헤스로 이어졌다. “방대한 책을 쓰는 건 쓸데없이 수고스러운 일이다. 차라리 그 500페이지짜리 책이 존재한다고 치고 그에 대해 한두 마디 하는 것이 낫다.”

보르헤스에게 책에 관한 이야기는 책이 실존하든 허구이든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독자들은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다. 『보바리 부인』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가상의 책 『보바리 남편』에 대한 이야기만큼이나 환상적일 뿐이다. 문학은 그렇게 돌아간다.

이 책에 등장하는 허구의 책은 23종이다. 『로빈슨 크루소』에 대한 새로운 패러디 『로빈슨 연대기』, 길가메시 신화를 이용해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넘어서려는 『기가메시』, 아르헨티나 오지에서 왕국을 세운 나치 장교의 이야기 『루이 16세 중장』, 오직 부정문으로만 이뤄진 소설 『아무것도 아닌, 혹은 원인에 따른 결과』, 도스토옙스키 『백치』에 대한 새로운 패러디….

보다시피 패러디가 많다. 웃음 포인트를 찾기가 쉽지는 않지만 집필의 기본 동력은 유머였을 것이다. 렘은 이 책에 대한 서평까지 썼다! 서평이므로 ‘렘은…’이라고 시작한다. 하지만 이 책의 서문처럼 실려 있다. 서평(서문)의 끝은 그도 이 모순을 안다는 내용이다.

읽다 보면 아이디어가 동일해도 렘이 보르헤스와 얼마나 다른 작가인지 알 수 있다. 보르헤스는 소설을 쓰든 가짜 서평을 쓰든 가짜 번역을 하든, 결과는 같다. 그것은 늘 보르헤스의 소설이다. 배후에 개성적이고 고전적인 음색을 가진 단일한 작가, 보르헤스가 있기 때문이다.

렘의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여기서 각 서평의 ‘필자’들은 의도적으로 다른 음성으로 말하는 느낌이다. 이 허구의 서평들은 렘의 소설로 수렴되기보다 제시된 논리의 끝을 보고 싶어 한다. 문학에 귀순하기를 원치 않는 철학적인 사고 실험집. 이를 받아들여야 읽기가 조금 수월해진다.

추상적인 인상과 달리 동시대인들에게 렘의 유머는 즉각 이해됐을 가능성이 있다. 『페리칼립스』에는 작가가 창작을 포기할수록 연금을 더 받는 시스템이 등장한다. ‘쓰레기 문학 생산을 억제하려는’ 취지이다. 이게 뭘까? 공산주의 국가의 검열 이야기 아닐까? 당의 지침에 따르는 작가는 연금 총액을 잃지 않는다. 한두 번 ‘어리석은’ 작품을 발표한 작가는 연금이 깎일 것이다. 만일 마음대로 쓰겠다고 나온다면 오히려 ‘돈을 내야 할 것이다’(벌을 받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아닌, 혹은 원인에 따른 결과』에서 끝없이 부정문만 되풀이하는 주체는 어떤 혐의로 조사를 받는 시민일지도 모른다. 뭐라고 부인하든 어차피 진술서는 완성되고, 그는 벌을 피할 수 없다. 그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거나 ‘원인에 따른 결과’로 치부될 따름이다.

가장 흥미롭고 접근하기 쉬운 장은 『기가메시』와 『루이 16세 중장』이다. 후자에 대해 옮긴이는 “책이 있다면, 내가 번역하고 싶다”고 썼다. 있다고 치고 번역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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