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소설가 박대겸의 장편소설 '외계인이 인류를 멸망시킨대'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박대겸은 그동안 '그해 여름 필립 로커웨이에게 일어난 소설 같은 일', '부산 느와르 미스터리' 등의 작품을 통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소설로 요리하여 펼쳐 보이는 재능을 보여준 바 있다.

새롭게 내놓는 이번 소설에서 박대겸은 지구 멸망 일주일 전이라는 절체절명의 순간 앞에 주인공들을 세워 놓는다. 멸망이라는 단어는 자연스레 황폐한 세계를 떠올리게 하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가뿐함을 잃지 않는다. 일상은 계속되고, 인물들은 절망에 빠져들거나 경직된 비장함을 갖추는 대신 아침에 일어나 학교를 가는 듯한 경쾌한 리듬을 유지한다.
평범하고 명랑한 주인공의 반복적인 일과의 관성은 엄중한 지구 멸망 예고마저 뒷전으로 만든다. 지구에서 약 108만 광년이 떨어진 행성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셀타 드리온느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인류의 0.0001퍼센트만 남기고 모두 말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인류에게 주어진 유예 기간은 단 일주일이다.
주인공 지민 역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외계 존재의 영상을 몇 번이고 본 뒤였지만 다시 밝은 하루는 어제와 변함이 없다. 탁구 동아리 내 토너먼트 대회에 참여하고, 라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오래된 친구들과 만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눈다. 하루, 이틀, 사흘, 예고일은 다가오지만 구원자는 없다.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 폭도나 약탈자도 없다. 작전 본부나 군대도 없다.
가벼운 것을 무겁게, 무거운 것을 가볍게. 박대겸은 '외계인이 인류를 멸망시킨대'를 통해 전복을 거듭한다. 박대겸의 문체는 전복이라는 형식을 공고히 하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어두운 운명도 부침개 뒤집듯 가뿐히 메칠 기세로 돌진하는 문장들의 에너지가 이 소설의 미덕이다. 각자의 앞을 가로막은 장벽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외계인이 인류를 멸망시킨대'의 문장들을 타고 훌쩍 뛰어넘어 볼 일이다. 값 15,000원.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