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빠르면 12월 늦어도 1, 2월까지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인력을 파견해야 하는데, 우리가 원하는 만큼 비자가 발급될지 걱정입니다.”
한 반도체 장비사 고위 임원의 말이다. 그는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의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건을 언급하며 “당장 우리에게도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삼성전자의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에 제품을 납품하는 회사다. 지난 6월 사내 전자여행허가(ESTA) 출장을 금지하고 필요한 인원을 파악해 비자 신청 작업을 진행하던 차였다. 이 임원은 “삼성 프로젝트는 미국에 처음 첨단 2나노미터(㎚·1㎚=10억분의 1m) 파운드리 라인을 설치하는 만큼 인력들이 미리 가서 준비해야 한다”라며 “이런 일이 생겨서 비자 신청자가 많거나 지연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비자 단속’의 후폭풍으로 반도체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삼성전자 테일러 공장이 내년 가동을 목표로 준비에 한창인 가운데, 국내 인력 파견 지연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2022년부터 건설을 시작한 삼성 테일러 공장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완공률이 99.6%에 달했지만, 고객사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이후 진행은 ‘올스톱’된 상태였다. 건물 외관은 완성됐지만 대접할 손님이 없어 장비 설치 등 내부의 작업은 진행하지 않은 것. 하지만 지난 7월 테슬라와 맺은 22조8000억원 규모 계약을 계기로 삼성전자는 최근 테일러 공장 오픈 준비에 다시 돌입했다. 삼성은 본사 인력 파견과 파운드리 라인 구축에 필요한 설비 발주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차 벤더(공급사) 3차 벤더가 얽힌 반도체 업계의 특성상 공장 하나를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수많은 업체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기업에 비해 중소협력사들은 비자 발급에 난항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번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의 경우에도 구금된 300명 중 250여명은 협력업체 직원들이었다.
반도체 협력사인 A사의 한 임원은 “80%를 현지에서 채용해 해결한다 해도 나머지 20%는 한국에서 숙련된 인력이 가야 한다”라며 “정식으로 비자를 신청하려면 회사에서 감당해야 할 비용이 1인당 2000달러 이상 들어 엄청난 부담”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협력사인 B사 관계자는 “주재원 파견 비용이 부담스러운 기업들은 유학생이나 현지 체류자를 영주권 지원 조건으로 채용하는 방식도 사용해왔다”라며 “이민국에서 이제는 영주권 신청자에 대한 검증도 강화하는 만큼 향후에는 이 방식도 사용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 현지에서 지역 고용 창출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점도 부담 요소다. 테일러 지역 언론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테일러 상공회의소에서 주최한 행사에 참석해 “삼성 공장은 2026년에 가동을 시작하며 최대 2000명을 고용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말까지 삼성 테일러 캠퍼스에서 발생한 직·간접 고용은 3664명(건설직 제외)이었다. 현지고용에 대한 기대는 파견 인력을 향한 반발감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TSMC는 지난 1월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 장비 설치를 위해 대만 근로자 500명에 대한 비자를 미국에 요청했는데, 이에 애리조나주 노동조합은 거센 불만을 제기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 파운드리가 이제서야 대형 고객을 확보해 도약하려는 상황”이라며 “다양한 공급사들도 얽힌 문제인 만큼 비자 문제는 업계 전반에 영향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