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황금 비자’ 완화, 美 부유층 몰려…정치적 불안 피한 ‘플랜 B’ 주목
정치·사회적 양극화 미국…중국·유럽 등에서도 리스크 회피 수요 커지는 추세
전문가들 “심리적 안정 추구하는 자산가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선택지가 됐다”
뉴질랜드가 고자산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황금 비자(Golden Visa)’ 제도의 진입 장벽을 대폭 완화했다.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부유층의 이민 신청이 급증하고 있다. 정치적 불안정성과 사회 양극화가 심화된 미국에서 안정적인 대안 거주지를 찾으려는 수요가 뉴질랜드로 집중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뉴질랜드 중도우파 연립정부는 지난 4월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적극적 투자자 플러스 비자(Active Investor Plus Visa)’의 요건을 완화했다. 투자 금액 기준은 기존의 1500만 뉴질랜드달러(약 123억원)에서 3분의 1 수준인 500만 뉴질랜드달러(약 41억원)로 낮췄다. 영어 능력 요건은 폐지했다. 의무 체류 기간도 3년에서 단 3주로 대폭 축소했다.

뉴질랜드 이민부는 요건 완화 이후 두 달여 만에 총 189건의 신청이 접수됐다고 26일(현지시간) 밝혔다.
이전 2년 반 동안 접수된 116건보다 훨씬 많은 수치로, 단기간 내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셈이다. 이 가운데 약 100건은 이미 원칙적으로 승인된 상태다. 미국 국적자의 신청 건수가 85건으로 전체의 45%에 달했다.
그 뒤를 중국 국적자 26건(14%), 홍콩 국적자 24건(13%)이 이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과 사회적 분열에 따른 미국 고자산층의 불안 심리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전 뉴질랜드 경제개발부 장관이자 현재 이민 컨설팅 회사를 운영 중인 스튜어트 내시는 “신청자 대부분이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변화를 겪은 경험 때문에 뉴질랜드에 관심을 갖고 있다”며 “안정적인 민주주의와 독립적인 사법 체계, 안전한 금융 시스템 등 뉴질랜드가 가진 기본적 장점들이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뉴질랜드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 미국인들 사이에서 ‘이민 피난처’로 급부상한 바 있다.
당시 뉴질랜드 이민청 웹사이트 방문자는 평소 대비 약 2500% 증가했다. 2022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을 폐기한 직후에도 방문자가 4배로 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등장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해에는 뉴질랜드 부동산 시장에 대한 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도 함께 증가했다.

미국도 투자이민 제도를 손질하고 있다.
기존의 EB-5 프로그램을 대체해 500만달러(약 68억원) 투자를 조건으로 영주권을 제공하는 ‘골드카드(Gold Card)’ 정책을 도입했다. 미 상무부는 조만간 관련 세부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뉴질랜드의 이번 조치가 단순한 자본 유치 차원을 넘어선 전략적 판단이라고 본다.
한 이민 전문가는 “투자 금액 인하와 체류 요건 완화, 영어 시험 폐지는 명백히 고자산층 유입을 위한 조치”라며 “이를 통해 정치적 리스크를 피해 ‘제2의 삶’을 모색하는 글로벌 자산가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사회적으로 양극화된 미국뿐 아니라 중국, 유럽 등에서도 리스크 회피 수요가 커지고 있다”며 “뉴질랜드는 그런 흐름을 정확히 포착해 고소득층의 ‘플랜 B’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전문가는 “이제 투자이민은 단순한 수익이나 세금 혜택을 넘어서 ‘안전한 삶에 대한 보험’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뉴질랜드의 황금 비자는 심리적 안정을 추구하는 자산가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선택지가 됐다”고 설명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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