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휴전한 진짜 이유? “10일이면 아이언돔 뚫린다”

2025-06-25

글로벌 머니

다카하시 고레키요(高橋是清)란 일본인이 한 말이다. 다카하시는 러일전쟁(1904~5년) 당시 재무관료였다. 그 시절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영국 런던에서 이리 뛰고 저리 달리며 일본 국채를 팔아 전쟁비용(전비)을 조달했다.

러일전쟁은 1904년 2월부터 1905년 9월까지 얼추 19개월 이어졌다. 당시 일본이 쓴 전쟁비용은 17억1600만 엔이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푼돈이다. 하지만 그때 일본의 국민소득(national income)은 연간 20억 엔 정도였다.

그 시절 일본 경제가 메이지유신을 통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단 19개월 전쟁에 국민소득 85.8%에 이르는 돈을 쏟아부었다. 결국 해외(영국)에서 막대한 자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경제 규모가 열쇠

영일동맹 덕분에 일본은 런던에서 국채를 팔 수 있었지만, 전후 재정위기에 시달렸다. 일본 육군과 해군이 자랑하는 만주 육전과 대한해협 해전의 승리 이면이다.

전후 다카하시는 재무관료로 승승장구했다. 일본은행(BOJ) 총재까지 지냈다. 이른바 다이쇼데모크라시[대정(大正)민주주의] 시대인 1920년대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대공황과 빈부차이 등으로 등장한 군부세력이 1936년 일으킨 2·26쿠데타 와중에 사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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