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못된 것을 따져보지 않는 습관에 오래도록 길들여져 있으면 처음에는 잘못된 것을 마치 옳은 것처럼 피상적으로 생각하며, 관습을 강력히 옹호하게 마련이다”라고 토마스 페인은 그의 저서 『상식(Common Sense)』에서 글을 시작한다. 상식은 모든 사람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을 말한다. 그렇기에 상식은 당연한 것이고, 이를 모르거나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어리석거나 옳지 못한 것으로 본다.
인구나 노동보다 중요한 기술혁신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 도전해야
AI 인재 유출을 위기 아닌 기회로
상식의 뒷면을 보는 지혜 길러야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앞면의 상식만 보면 뒷면의 지혜는 놓치기 쉽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특히 AI 시대를 맞은 우리는 기존의 상식을 뒤집어 그 뒷면을 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일본사회는 출생률은 낮고 수명은 길어져 일찍 초고령사회가 되었다. 일할 젊은 세대의 인구는 줄고 은퇴한 노인들만 늘어나니 경제가 심각한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걱정이 많다. 우리나라도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에서 늘어나는 노인들을 줄어드는 젊은 세대가 부양해야 한다며 미래가 위기라고 한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비전을 잃어버리고, 청년세대와 노년세대가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매우 상식적인 전망이다.
하지만 일본의 요시카와 히로시(吉川洋) 도쿄대 명예교수는 그의 저서 『인구가 줄면 경제가 망할까』에서 상식의 뒷면을 본다. 우리는 생산의 3대 요소가 토지, 노동, 자본이라는 것을 상식으로 배웠다. 하지만 요시카와 교수는 이것은 18세기 맬서스식 인구론적 접근이라고 반박한다. 지금은 기술혁신(innovation)이 생산의 핵심요소인데, 아직도 노동을 생산의 주요 요소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노동이 생산의 핵심요소였던 과거에는 인구가 중요했고, 그런 상식으로 보면 젊은이 한 사람이 노인 한 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제 생산성은 인구에 근거한 노동력이 아니라 기술혁신에 있기 때문에 기술혁신을 이루면 젊은이 한 명이 100명 이상의 노인을 먹여 살릴 수 있는데, 인구만 갖고 경제성장을 논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이다.
AI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 AI 인재 이탈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뜩이나 적은 AI 인력 가운데 우수한 인재들이 월등한 대우를 받고 미국 실리콘밸리로 속속 유출되는 현상에 대한 염려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024년도 우리나라 인구 1만명당 AI 인재 순유출은 2022년 0.04명보다 크게 늘어난 0.36명이라고 발표했다. OECD 통계에서도 우리나라는 AI 인재 유출보다 유입이 많은 순위로 볼 때 38개 회원국 중 35위 최하위권으로 인재 유출이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작년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AI 콘퍼런스에 참석했을 때 많은 실리콘밸리의 한인 AI 스타트업 CEO들과 펀드 매니저들은 한국의 인재들이 실리콘밸리로 진출하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우리의 뛰어난 AI 인재들이 한국이라는 좁은 시장보다는 실리콘밸리라는 넓은 시장에서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탈피오트(엘리트 군사교육 시스템) 인재들은 군 복무 후 첨단 군사기술을 활용하여 팔로알토네트웍스(Palo Alto Networks) 등의 사이버 보안, 윅스(Wix)의 웹 플랫폼, 카토네트웍스(Cato Networks)의 클라우드 보안, 프로드사이언스(Fraud Sciences)의 핀테크 사기탐지, 기븐이미징(Given Imaging)의 의료기술 분야에서 창업하여 실리콘밸리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인다. 인터넷 방화벽이나 테러리스트 금융추적 기술, 미사일 광학기술을 활용한 캡슐 내시경 등 군사기술을 상용화하여 실리콘밸리의 탈피오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스타트업에 성공했다.
아직 미약하지만 우리나라도 AI 수학교육의 튜링, 간호사 교육의 DK디메인, AI 번역 XL8 등 실리콘밸리에서 인정받는 스타트업들이 나오고 있다. 이제 AI 인재가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위기를 걱정하는 상식의 뒷면에는 더 큰 무대에서 성공을 거두는 우리의 인재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알파고로 이세돌을 꺾은 영국의 수학 천재 데미스 허사비스가 딥마인드를 창업하여 구글에 인수된 뒤 알파폴드로 지난해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영국 시장에서라면 받지 못했을 대우와 기업 환경으로 실리콘밸리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우리 영화계는 영화시장 개방에 반대하며 스크린쿼터제에 매달렸다. 하지만 시장이 개방된 이후 국제사회에서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크게 주목을 받으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보호가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혁신은 다양성과 도전에서 나온다.
대만에서 태어난 젠슨 황은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지금 우리나라 GDP의 두 배가 넘는 시가총액을 가진 엔비디아를 창업했다. 국내 AI 인재유출을 걱정하는 상식의 뒷면에서 보다 넓은 세계시장에서 활약하는 우리 인재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