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여준구 대동로보틱스 대표가 27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개막한 ‘서울포럼 2025’의 기조강연에서 “한국이 로봇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열쇠는 다양한 분야의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는 파운데이션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챗GPT와 같은 언어 데이터 기반의 대규모언어모델(LLM)을 넘어 인간의 시각·언어·행동(VLM)을 모두 따라 할 수 있는 보다 고도화된 인공지능(AI) 모델이 구현돼야 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여 대표는 “한국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로봇에 적용할 수 있는 범용 AI 파운데이션 모델의 연구개발(R&D)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면서 “과거에는 로봇이 움직이는 개별 상황마다 프로그래밍이 이뤄져야 해 로봇의 활동 반경이 반복적인 작업 수준에 그쳤다면 피지컬 AI를 탑재한 로봇은 스스로 주변 환경을 살피며 작업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으로 다르다”고 진단했다.
여 대표는 한국이 로봇 산업 육성에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제로봇연맹(IFR)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세계 로보틱스 2024’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용 로봇 밀도는 2023년 기준 직원 1만 명당 1012대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그는 “2029년 기준 로봇 시장은 2024년 대비 2배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되는데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본다”며 “우리나라가 제조업 강국이라는 장점을 활용해 AI 첨단 제조 기술 개발에 투자한다면 큰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 대표는 우리나라가 제조업 기반 산업 환경을 십분 활용한다면 특화 로봇 분야에서 빠르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산업용 로봇의 경우 일본이 기술 주도권을 갖고 있는 데다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이 10년간 생산량을 15배나 늘리며 시장점유율 절반을 확보한 상태다. 평생 자율 수중 로봇을 연구한 여 대표는 “한국은 가격보다는 기술력으로 로봇 경쟁력 우위를 가져가야 한다”면서 “반도체·조선·철강·석유화학 등 산업 분야에서 사용되는 특수 목적 로봇으로 승부를 걸어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농가가 고령화로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만큼 정밀 농업을 돕는 특수 로봇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면서 “농업 로봇은 날씨 등 각종 데이터를 분석해 농부가 어떤 씨를 뿌리고 언제 수확해 시장에 낼지를 결정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고 부연했다.
해외에서 로봇 산업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도 특화 로봇 중심 전략에 힘을 싣는다. 여 대표는 “글로벌 로봇 시장의 투자 규모가 올해 2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며 엔비디아·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해외 빅테크 기업들이 잇따라 로봇 전용 신형 AI 모델을 공개하고 있다”며 “협동 로봇은 글로벌 브랜드 순위 변동이 심하고 점차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 대표는 정부가 로봇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미국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미국 과학기술 분야 연구 지원을 총괄하는 국립과학재단(NSF)에서 정보 지능 시스템 프로그램 디렉터와 동아시아·태평양 지역 소장으로 지내며 미 연방정부의 주요 로봇 R&D 사업 기획에 기여했다. 여 대표는 “NSF의 자금 지원을 통해 수십 년간 다양한 로봇 개발 프로젝트가 추진돼왔다”면서 “NSF가 투자하는 연구 분야를 보면 5년 이후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선제적인 첨단기술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정부 기관이 일찌감치 로봇 연구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상용화를 더욱 앞당겼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NSF는 2022년 로봇을 ‘공학적으로 설계된 구조물에 구현된 지능’이라고 정의하며 AI와 로봇 간 시너지에 일찍이 주목하기도 했다. 여 대표는 “미국이 오래전부터 연구를 기획하고 투자하는 반면 한국은 뉴스에 나와야 정책적인 반영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는 막대한 투자가 수반되는 만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처럼 로봇 제조 회사뿐만 아니라 데이터 수집 회사 등 생태계 전반에 대한 투자가 확대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