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을 누비는 휴머노이드… 중국 제조업에 불어닥친 ‘인간형 로봇’ 열풍 [차이나우]

2025-09-06

지난달 하순 중국 장쑤성 우시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 한여름의 열기가 가득한 도색·건조 라인 안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뜨거웠다. 온도계는 40도에 육박했다. 땀방울이 연신 흘러내리는 사이, 생산라인을 재현해놓은 한 부스 안에서 두 팔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로봇 한 대가 차량 외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도색을 마친 차체가 제대로 건조됐는지, 표면에 흠집은 없는지 일일이 점검하는 작업이었다.

옆에 서 있던 회사 관계자는 “사람은 뜨거운 곳에서 오래 일할 수 없지만, 로봇은 피곤함도 위험도 없다”며 “한 번 프로그래밍을 마치고 충전만 이어가면 15시간이든 20시간이든 계속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로봇은 양손에 센서 봉을 들고 휠 너트를 점검하고 있었다.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자 다음 휠로 이동해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단순하지만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담당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 근로자들이 더 가치 있는 작업에 투입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로봇들은 중국 로봇 기업 유비테크와 갤봇이 제작한 모델로, 현지 자동차 장비업체 톈치가 구입해 공정에 맞게 학습시킨 뒤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톈치는 단순히 로봇을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습된 모델을 다른 완성차 업체에 공급하는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실제로 지리자동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지커를 비롯한 여러 전기차 공장에 납품한 경험이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우시뿐 아니라 난징의 또 다른 기업 톈촹도 위험한 현장에 투입되는 휴머노이드 개발에 나서고 있다. 다만 이들은 두 발로 걷는 형태 대신 바퀴와 레일을 기반으로 한 모델을 생산한다. 가스 누출이 우려되는 지하 설비, 하수 처리장 등 사람이 직접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에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톈촹은 이미 한국, 중동 기업 등과 계약을 체결했고 상장을 준비 중이다.

◆“자동차처럼 일상으로 들어올 것”

톈치 직원은 “1890년 처음 자동차가 등장했을 때 마차를 몰던 사람들은 느리고 쓸모없다고 비웃었다”며 “지금은 자동차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지 않느냐. 로봇도 똑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로봇의 효율성이 인간의 30~40% 수준에 불과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산업의 전환이 반드시 로봇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톈치는 원래 자동차 조립 장비를 판매하고 배터리 재활용 등을 주력으로 하던 기업이었다. 하지만 전기차 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공정 전반의 디지털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핵심 도구가 될 것이라 판단했다. 이에 회사는 기존 공장 한 동을 로봇 학습 센터로 바꿔 수십 대의 로봇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물건을 나르고, 차체 도장을 점검하며, 배터리를 상자로 옮기는 등 다양한 동작을 반복 학습하도록 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테슬라가 옵티머스 로봇에게 단순 운반 훈련을 시키는 데 40시간이 걸렸다고 한다”며 “우리 로봇은 그보다 시간을 줄였다”고 강조했다. 정확한 수치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학습 효율성을 개선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톈치는 단순히 외부 모델을 가져와 학습시키는 데서 나아가 최근 로봇 부품 제조 기업을 인수했다. 이를 통해 설계와 제작, 생산 역량까지 내재화하며 로봇 산업 전반에 발을 넓히고 있다.

◆“산업용과는 다르다”… 체화지능 실험장

사실 산업 현장에는 이미 수많은 로봇이 들어와 있다. 용접, 조립, 운송 등은 오래전부터 산업용 로봇의 몫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사람처럼 생긴 휴머노이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톈치 관계자는 “산업용 로봇은 입력된 ‘1, 2, 3’ 순서대로만 움직인다. 휴머노이드는 상황을 스스로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다. 머리 부분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개념이 바로 ‘체화지능(具身智能·Embodied Intelligence)’이다. 체화지능은 단순한 껍데기를 넘어 실제 환경 속에서 경험을 통해 학습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뜻한다. 난징의 화샤로보틱스는 이를 위해 별도의 응용센터를 열고 대규모 시나리오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기자가 찾은 센터에서는 자체 개발한 로봇 ‘샤치’와 ‘샤오란’이 날씨를 물으면 대답하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시연했다.

화샤 관계자는 “우리는 서비스 산업 기반의 지능형 플랫폼을 지향한다”며 “화웨이 출신 창업팀이 기술을 개발했고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아 상업 거래도 일부 성사됐다”고 말했다.

◆연구소의 뒷받침… “인재가 원천”

로봇 산업의 성장은 기업의 열정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장쑤성 난징에 위치한 튜링 인공지능(AI) 연구소는 중국이 로봇과 AI 분야에서 발빠르게 앞서가는 배경을 보여준다. 연구소를 이끄는 인물은 컴퓨터 과학계 최고 권위자인 야오치즈 칭화대 교수. 컴퓨터과학의 노벨상이라 부리는 튜링상을 수상한 야오 교수는 미국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2004년 중국으로 돌아와 연구를 이어갔고, 2018년 칭화대와 난징시 정부가 함께 연구소를 설립했다.

왕쉬 연구소 기술연구부장은 “연구 성과를 창업으로 연결하고, 수익을 다시 연구에 환원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연구소가 투자한 스타트업 로봇에라는 ‘싱둥L7’ 모델로 세계 휴머노이드 대회 높이뛰기와 멀리뛰기에서 우승했다. 또 법원에서 판사 업무를 지원하는 AI 시스템, 가품을 판별하는 앱 ‘튜링 인증’ 등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도 개발 중이다.

왕 부장은 “결국 기술의 근원은 인재”라며 “칭화대와 난징대 등과 연계해 산업 중심의 인재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커지는 시장, 몰리는 자본

중국 정부는 올해를 ‘휴머노이드 상용화 원년’으로 규정했다. 지난 4월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 마라톤 대회에는 수십 개 기업이 참가해 성능을 겨뤘다. 2위를 차지한 쑹옌둥리는 대회 직후 주문이 몰려 7월에만 150대를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도 자금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선전 증시에선 로봇 상장지수펀드(ETF)가 출시 첫날 8억7000만위안(약 1699억원)이 몰렸다. 유니트리는 시리즈C 투자를 마치며 기업가치 120억위안(약 2조3000억원)을 달성했고, 유비테크는 이미 홍콩 증시에 상장했다.

제조 현장에서도 로봇 도입은 확산 중이다. 자동차 부품사 푸린정궁은 중국 로봇 기업 애지봇의 휴머노이드 100대를 공장에 설치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애지봇은 LG전자와 미래에셋이 투자한 회사로, 향후 3년간 10만대 공급 계획을 내놨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산업용 로봇 생산량은 36만9000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6% 늘었다. 이미 2021년 연간치(36만6000대)를 넘어섰으며, 연말까지 최소 74만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 대비 3배 이상 성장한 규모다.

우시·난징=글·사진 이우중 특파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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