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입법·규제자 진출' 문과생 기술 이해도 높이자

2025-05-19

최근 '문과 놈들이 다 해먹는 나라'라는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의 발언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국종 원장이 국방부에 사과하기는 했지만, 그와 별개로 이 발언은 상당한 공감대를 얻었다.

실제로 우리 입법자, 규제자는 다수가 문과 출신이다. 22대 국회의 경우, 법조인은 역대 최다인 61명이 당선됐지만 이과 출신은 22명에 불과하다. 22명 중 12명은 보건의료계열이다. 로스쿨에서도 이과 출신은 15% 정도다. 공무원의 경우에는 기술고시가 있기는 하지만, 고위공무원 중에서 문과 출신을 찾는 것이 더 쉽다. 사법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 이공계 출신은 여전히 '독특한 이력'에 속한다. 지난해 기준 전국 4년제 대학에서 자연계가 56.1%를 차지하고 있지만 입법·행정·사법부 그리고 이들의 공급처가 되는 로스쿨에서는 문과 출신이 압도적이다.

사회적으로는 이공계 우대와 문과 기피 현상이 나타난 지 오래됐고 문과 청년들의 취업 부진은 통계적으로도 드러나고 있다. 기업의 채용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과거에 문과 위주로 채용했던 마케팅, 영업, 정책, CR 등 부문에서도 이과 출신을 채용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제품, 서비스가 고도화되고 복잡해지면서 문과 출신 신입사원에게 자사의 제품, 서비스를 이해시키는 것보다 이과 출신에게 마케팅이나 정책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빠르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문과생의 입법·행정 및 사법부 진출을 더욱 강고하게 할 수 있다. 문과 청년들의 취업문이 좁아지니 입법, 규제 영역으로 진출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법조 시장의 어려움에도 로스쿨 입학을 위한 법학적성시험 지원자는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점도 이러한 현상을 뒷받침한다. 그나마 학업 능력이라도 갖춘 문과 청년들은 학창 시절 전부를 고시와 변호사시험에 올인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험으로 점철된 학창 시절을 보낸 문과생들이 나중에 규제자, 입법자가 되어 급변하는 다양한 기술과 서비스, 이와 관련된 비즈니스와 글로벌화된 생태계를 온전히 이해하고 균형 잡힌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규제실패는 시장실패보다 위험하다. 많은 자원을 투입해 신기술, 신제품을 개발해도 규제자의 부지, 오해, 편향을 극복하지 못하면 시장에 자리 잡기도 전에 사장될 수 있다. 디지털 플랫폼 서비스에 필수적인 서버, 클라우드, 데이터 및 개인정보, 사이버 보안 등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플랫폼 기업이 컴퓨터 몇 대 가지고 '날로 먹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합리적 규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학생, 청년들을 이공계로 유도할 수는 없다. 소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입법자, 규제자로 진출할 학생들의 기술 및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를 위해 기업들이 먼저 나설 필요가 있다. 예컨대, 매년 최소 5만명 이상의 문과생들을 위한 인턴십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제적인 업무를 체험하게 함으로써 기술과 제품, 서비스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규제나 소비자 불만에 대한 대응 등을 직접 경험하게 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 개발, 혁신과 비즈니스의 어려움을 알아야 한다. 정부도 여기에 인센티브를 주고 글로벌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는 등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학생들의 취업을 반드시 연계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사회 전반의 기술 및 서비스에 대한 리터러시 증진에 도움을 줄 것이고, 불필요한 규제 논의의 확산을 방지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문송하다'라는 신조어가 유행한 것도 벌써 10여년이 되어 간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정보기술(IT) 강국을 꿈꾼다면 이제 그만 문송해야 하지 않을까.

이승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seungminlee@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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