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창립된 미네르바대…세계 혁신 대학 1위·하버드대 16위
"의대 입시보다 사고력·판단력 중요…다양한 사고가 창의적 사회 만들어"
"다양성=국가 경쟁력…다양한 시각에서 해결책 제시할 '인재 풀' 필요"
"AI 시대, 문제 해결 능력·판단력 키우는 교육해야"
[제주=뉴스핌] 신수용 기자 =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년 넘게 이어지며 극심한 사회 문제로 번진 가운데, 벤 넬슨(Ben Nelson) 미국 미네르바대학교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인공지능(AI) 중심의 기술 변화 사회에서는 의사와 같은 직업조차 (유지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뉴스핌은 지난 13일 제주도에서 열린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APEC 2025 KOREA)'에 참석한 벤 넬슨 미네르바대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를 단독으로 만나 한국의 '의대 쏠림' 현상과 입시 중심 교육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벤 넬슨 CEO는 한국 사회의 '의대 쏠림' 현상과 의정 갈등에 대해 특정 분야로의 인재 집중이 결국 사회의 창의성과 국가 경쟁력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체계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이 국가의 미래를 위한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 "특정 분야 명예·성공 사라질 수도"

그는 의대에 최상위권 학생들이 몰리는 '의대 쏠림'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의대를 졸업하는 미래에 특정 업계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며 "지금 18세 학생들이 사회에 나갈 때에는 우리가 상상도 못 한 새로운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전환을 맞이하는 등 의사라는 직업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의사와 같은 특정 분야의 직업이 품고 있는 성공과 명예에 대한 환상이 시대가 바뀌면 쉽게 사라지거나, 무너질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10년 전 이른바 '컴퓨터 코딩 열풍'이 불었지만, 현재는 AI가 대부분의 코딩을 대신하고 있는 현상을 예로 들었다.
그는 "내가 18살 때에는 지금의 인터넷과 같은 세계 통신망을 위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사용 가능하게 인터넷이 상용화됐다"고 설명했다.
의대와 같이 특정 직종만을 목표로 삼는 공부는 학생의 미래에 장기적으로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는 "AI가 방사선으로 촬영한 사진을 의사보다 더 잘 읽는 시대에 (의사라는) 하나의 직업만을 향해 달려가는 건 위험하다"라고 부연했다.
또 "한 분야에만 인재가 몰리는 근시안적 접근은 다른 가능성을 닫히게 하기에 위험하다"며 "의사뿐 아니라 과학자와 예술가, 사회과학자 등 각기 다른 사고 체계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야 더 창의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현재 의대 증원 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 단기 수급 문제에만 집중하지 말고, 교육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더 큰 틀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벤 넬슨은 국가 경쟁력은 다양성에서 나온다고 봤다. 그는 "20~30년 뒤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와 수요가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기에, 진정한 국가 경쟁력은 특정 분야 인재가 아닌 다양한 분야에 창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인력 풀(다양한 예비 인재)'에서 나온다"고 조언했다.
◆ "AI 시대 교육의 핵심은 판단력 키우기"

벤 넬슨은 세계 각국 교육계가 마주한 가장 큰 과제로 학생들이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있는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지는 것을 꼽았다. 이를 위해 AI 시대 교육의 핵심으로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힘을 키우는 '판단력'으로 봤다.
그는 "AI가 모든 걸 할 수 있다 해도 최종 결정을 내리는 건 인간"이라며 "특히 결정이 장기적으로 어떤 파장을 미치고 영향을 줄지 읽어내는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벤 넬슨은 "AI 시대에 인간이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은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을 구별하고, 잠재적으로 아주 나쁜 결과를 불러올지 미리 알아차리는 일"이라며 "미네르바는 그 판단력을 키우기 위해 '체계적 사고'를 가르친다"고 말했다.
'체계적 사고'란 하나의 해법이 아닌 다면적인 시각과 관점, 다양한 분석을 통해 문제와 원인, 해결 방안을 재구성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를 통해 단기적 현상에 매몰되지 않고, 원인을 파악해 근본적이고 다양한 대비책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AI가 더 빠르고 발전된 방법을 내놓을 수 있는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에는 기존의 교육 체계와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벤 넬슨은 "체계적 사고는 학생들이 한 가지 문제를 다양한 분석 도구와 관점으로 접근하는 훈련을 통해 만들어지는 판단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라며 "(인터넷 등으로) 선택지가 많은 시대엔 무엇보다 '선택의 질'이 중요한데, 한 가지 접근법에 머물지 않고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적용하는 등 계속 다양한 관점을 쌓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매출 감소 문제에 할인과 같은 단기 처방만 반복하는 예시를 들며, 시장 구조와 소비자 행동, 경쟁 요소 등을 복합적으로 분석해야 근본적 해답에 접근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 하버드보다 좁은 문, '합격률 1%' 미네르바대

201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미네르바대는 세계에서 가장 실험적인 대학으로 손꼽힌다. '세계 혁신 대학 순위(WURI)'에서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1위에 올랐다. 지난해 하버드대는 16위를 차지했다. 미네르바대 합격률은 약 1%로 하버드보다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입학 경쟁률이 매우 높다. 미네르바대는 입시 점수 대신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 다양성 등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미네르바대는 오프라인 캠퍼스나 강의실 없이 독일 베를린과 영국 런던 등 세계 약 7개 도시에 있는 기숙사에서 학생들이 지내며, 온라인 수업을 듣는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수업은 온라인 세미나와 실시간 토론과 피드백(조언·평가) 등으로 진행된다.
벤 넬슨은 학생들이 실제 문제에 이 원리를 적용하고, 다른 사람의 해결책도 평가해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도록 훈련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미네르바대의 교육 철학인 '현실 문제 해결'과 '일상에서의 적용'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미네르바의 교육은 단순히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반을 두지 않고, 현실의 문제의 원인을 찾고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중점을 둔다"며 "학생들에게 아이디어나 개념 혹은 화두를 제시하고 이를 사회와 현실 문제 해결에 활용해 일상에 언제든 적용할 수 있도록 계속 연습시킨다"고 밝혔다.
aaa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