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어떤 분이 SNS에 대학입시에 대한 파격적인 제안을 올렸다. “대학입시 자체를 없애고 추첨으로 선발하자”는 제안이었다.
학생들이 과다한 경쟁과 학습에 내몰리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아이디어지만 그동안 종종 듣던 얘기라 그리 신선하지도 않고, 수반될 몇가지 심각한 문제점들이 염려된다.
영재교육과 엘리트교육
학생들의 학습 부담과 사교육을 줄여주기 위한 정책으로, 대학입시 전면 폐지보다 훨씬 덜 과격하면서도 현실적인 정책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동안 슬쩍 없어진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를 다시 불러오는 것이다. 교육 문제에 대해 논할 때 주로 대학입학시험 제도가 도마에 오르지만 실은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과다 학습과 사교육에 시달리는 불쌍한 아이들은 고등학생들이 아니라 그보다 어린 학생들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를 보면 사교육을 가장 많이 받는 학년은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3학년이다. 고등학생들은 그나마 머리가 좀 커서 어느 정도 주체적으로 판단하지만 그보다 어린 학생들은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놀기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면서 균형 잡힌 정서를 길러야 할 나이에 학업에 내몰리고 있다.
영재교육과 엘리트교육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영재교육은 상위 1% 정도의 재능을 가진 영재들에게 특별한 교육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고, 엘리트교육은 일부 고등학교들을 수준에 따라 서열화한 뒤 시험 성적 상위권 학생들을 성적에 따라 그런 학교에 배분하여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영재교육 시스템은 아주 잘 조성돼 있다. 영재교육 기관으로 과학영재학교 8개와 과학고등학교 20개 외에도 중학생이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영재교육원이 있다.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영재교육원이 25개, 대학 부설이 90개(이 중 과기정통부 승인 27개) 있으며, 영재학급도 1000개가 넘는다.
우리의 영재교육은 그동안 우수한 이공계 인력 양성에 기여해왔다. 어린 영재들을 위한 과학영재교육원은 학생들의 과학에 대한 호의적인 관심을 키워주었고, 과학영재학교 등은 최고의 과학 인재들을 배출해왔다. 그러나 과학고의 수가 너무 많다는 점, 과학고와 영재학교 간의 불합리한 차별이 너무 크다는 점, 일부 지역 과학고의 수준이 너무 떨어져 있다는 점 등의 문제점이 있다. 그래서 영재학교는 그대로 두되, 과학고의 수를 과감히 줄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도권은 고교 평준화로 돌아가자
과다학습, 선행학습 등의 문제는 주로 엘리트교육으로부터 기인한다. 최소한 중학교 교육과정까지는 사교육을 통해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사교육에 따른 불평등이 크게 발생하고 있다.
나는 서울과 경기도 일부 지역 등 교육 과열지구에서 고교 평준화를 실시할 것을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다. 아울러 과열지구의 중학생들은 지방 소재 전국단위 자사고 입학을 제한하는 것도 제안한다. 나는 ‘평준화는 하향 평준화를 가져온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 자신이 평준화 1세대인데 대학에 입학한 우리 동기들이 명문고 출신인 선배들보다 입학 성적과 학점이 오히려 더 좋았고 후배들도 그러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모아서 가르치면 더 효율적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명문고에서도 중하위권 학생들은 학습 의욕이 떨어지는 반면, 일반고의 상위권 학생들은 남들의 관심과 칭찬 덕분에 학습 의욕이 좋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차치하고, 다양한 계층의 학생들이 서로 어울리는 것이 더 교육적이다.
고교 평준화의 부작용으로 지역 간 불평등을 꼽을 수 있다. 예전의 강남 8학군 문제와 같이 학생들이 사는 지역에 따라 학력 차이가 나게 되면 서울 일부 지역의 집값이 치솟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대학입시에서 지역 균등 또는 학교 균등의 비율을 높이는 방안과 수시전형에서 학교 내신을 중시하는 학생부교과전형의 비율을 높이는 방안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
자기 아이는 행복하게 자라게 하겠다며 아이를 유학 보내는 집들이 많다. 교육열이 너무 뜨겁다면 식히기 위한 정책을 연구해야 한다. 물론 교육에서는 정책 변경을 통해 한꺼번에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이 겪고 있는 과도한 경쟁 상황을 개선해 나가는 데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