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6개월은 어떤 세상을 보여주고 있을까. 제로섬 세계관이 그중 하나다. 보호주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관세전쟁이 가리키는 것은 나와 너, 선악, 순수와 오염, 승과 패를 나누려는 인간의 본성과 그것을 이용하는 포퓰리즘이다. 무역적자가 상대국에 이용당한 결과라는 레토릭이 미국 정부를 움직이고 있다. 세상을 한정된 파이로 보는 것이다. 최강국이 무역과 상호의존을 안보 취약성으로 인식하는 것은 그만큼 내부 사정이 어렵다는 방증이다. 세계 질서를 우리가 좌우할 수는 없으니 받아들이고, 국익을 지키는 대외정책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 내부의 문제도 제로섬 방식으로 풀어갈 수 있을까.
한국은 자본주의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고 선진국에 진입했다. 그 성공 이면에 노동시장 이중구조, 사교육 경쟁, 소득·자산 격차,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 지방소멸, 극단 정치가 자리 잡고 있다. 배타적인 제로섬 세계관이 한국에서도 입지를 넓혀갈 위험은 더 커졌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기본 질서가 기능하지 못하는 징후가 많다. 낡은 시스템을 바꾸는 구조개혁 과제가 산적해 있다. 내 것을 얻기 위해 남에게서 빼앗아야 하는 제로섬 상황을 방치한다면 외부와의 경쟁 이전에 내부 분열이 스스로를 파괴할 것이다. 누군가가 희생해 행복을 누리는 사회가 지속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경쟁을 높이면서 사회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변화를 수용하면서 기본생활을 보장할 수 있을까. 성장과 분배, 시장원리와 포용성을 선순환시킬 수 있을까. 최소한의 요건은 앞날에 대한 희망이다. 부모 세대보다 못살 거라고 생각하는 청년의 마음을 보자. 심한 경쟁 속에서 교육받고 자랐는데 일자리는 귀하고 집은 갖기 힘든 현실은, 단기적으로 제로섬이 맞다. 포지티브섬, 윈윈으로 갈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야 인내하고 노력할 수 있다. 결국 정책이 중요하다.
첫째, 성장 사다리이다. 경제 파이가 커지지 않고는 제로섬을 벗어나기 어렵다. 정부가 성장잠재력과 생산성 제고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은 의미 있다. 기술과 혁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방향도 좋다. 개인과 기업이 성장하는 쪽으로 인센티브가 작동해야 한다. 기회를 공평하게 가질 수 있도록 평생교육을 포함한 양질의 공교육, 의료 접근성, 주거 안정을 지원하는 것이 기본이다. 경쟁해볼 기회를 얻지 못하도록 진입 자체를 막거나 커지는 것이 불리하도록 규제가 작동한다면 문제다. 창업, 스케일업, 인수·합병(M&A)과 기업공개(IPO) 등 벤처투자의 회수, 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의 성장 사다리를 보강해야 한다.
둘째, 사회안전망이다. 경제활동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서 병행해야 할 과제다. 기술변화가 심하고 대외환경이 불안정한 시대에 혁신만이 살길이지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지 않고 혁신을 추동하기는 어렵다. 추가 재원이 필요하므로 장기적인 우선순위와 방향성을 정하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세수가 크게 결손나는 상황에서는 미래를 약속할 수 없다. 세수 기반을 지키고 확충해 나가야 한다. 기업 환경을 개선해서 수익성 있는 기업을 늘리는 것이 안전망의 토대다.
셋째, 경제적 이동성이다. 경제가 생태계라면, 노동·토지·자본·기술이 움직이는 데 걸림돌이 적어야 한다. 공급망 다변화와 경제 안보에 유념하되 자유무역 원칙을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관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민 문제도 인구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현실과 이민자와 이웃해서 살기는 불편하다는 감정이 상충할 수 있다. 충분히 토론해보고 꼭 필요하다면 결단해야 한다. 개방과 다양성은 혁신을 촉진하는 요소다.
넷째, 의사결정에의 참여다. 다론 아제모을루의 관점에서, 포용성이란 모든 시민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보상받을 뿐 아니라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상충하는 목표들 속에서 정부가 먼저 답을 내놓기 어렵다. 답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옳은 정책도 단결된 소수가 극렬히 반대하면 실행하기 어렵다. 양극단 세력에 휘둘리지 않고 국익을 찾아 균형을 잡는 의사결정이 실용주의의 방법론이다.
제로섬식 접근은 단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정치 구호가 될 수는 있어도 장기적 해결책은 아니다. 제로섬 사회는 내부 분열로 대외 압력에 취약하다. 성장과 이동성이 높아야 포지티브섬의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 제로섬의 세계 질서 속에서 인구, 중국, 기술, 부채, 지정학의 도전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제로섬에서 벗어나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