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사람들은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이라는 밀물이 모든 배를 띄운다(A rising tide lifts all boats)고 믿었다. 각국이 비교우위에 따라 상품을 생산해 자유시장에서 교역하면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배든, 미국의 배든 모두가 부로 가득한 대양을 항해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특히 신자유주의 질서를 주도했던 미국에서 이 믿음은 완전히 무너졌다. 미국에서는 첨단산업과 서비스업이 성장했지만, 제조업이 급격히 쇠퇴했다. 제조업 일자리를 발판 삼아 중산층으로 올라섰던 노동자들도 삶의 기반을 잃었다. 한국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막대한 대미 무역 흑자를 기록했지만,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논리 아래 하청·재하청, 불법 파견,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됐다. 두 나라 모두에서 경쟁력이 약하다고 평가되는 산업과 지역의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생존 그 자체를 위협받는다. 자유무역이 만든 부가 사회 전반에 재분배되지 않고, 자본의 이동성이 노동자들을 취약하게 만든 결과다.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밀물이 들어오면) 노 젓는 작은 보트는 오히려 더 힘든 시간을 겪는다”고 지적한다.
한국에서 ‘농업’이란 작은 보트는 아예 침몰 중이다. 농산물 수급 정책과 가격 지지 정책은 상당 부분 세계무역기구(WTO)에 의해 ‘시장을 교란하는 보조금’으로 찍혀 사용할 수 없게 됐다. 농산물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양곡법’과 ‘농안법’ 개정안이 수년간 논란과 정쟁의 대상이 됐던 것도 실은 우리가 WTO 체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미국 등 다수의 국가와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은 수입 농산물에 부과하는 관세를 낮춰 국내 농업 기반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노 젓는 작은 보트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트럼프의 패권적 보호무역주의는 이에 대한 “극우적 성찰”(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장)이다. 지금은 유럽연합(EU), 일본 등 다수의 국가가 트럼프의 위협에 굴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누구도 정글의 법칙 속에서 살고 싶어하지 않기에, 시간이 지나면 미국 외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자유무역질서를 만들자는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때 우리는 어떤 질서를 말할 것인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같은 신자유주의 무역질서인가, 아니면 자본을 규제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기후위기 같은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관리 가능한 무역질서’인가. 작은 보트들은 표류하거나 침몰하는 중이고, 수많은 이들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걸 안다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