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혁신의 밀림을 키워라

2025-08-19

올해로 벤처기업협회가 설립 30주년을 맞았다. 1995년 ‘벤처’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절, 불모지에 심은 작은 씨앗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의 거센 풍랑 속에서도 꿋꿋이 자라 대한민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거목으로 성장했다. 정보통신·소프트웨어·전기전자·바이오 등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한 벤처기업들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시장을 개척하며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청년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었고 일자리 창출과 사회·문화적 변화를 이끌었다. 한 세대에 걸친 땀과 열정으로 이뤄낸 눈부신 성과에 깊은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지난 30년이 선진국을 뒤쫓는 ‘추격형 성장’의 시대였다면 앞으로의 30년은 시장을 창조하는 ‘선도형 혁신’의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 벤처 30주년의 이정표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새로운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최근 협회가 발표한 ‘벤처기업 산업구조 변화 분석’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전통 제조업 중심에서 정보기술(IT)·소프트웨어 등 기술 기반 서비스업과 첨단산업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2014년 30.3%였던 서비스업 비중은 지난해 42.6%로 늘었고 2021년부터는 첨단산업 벤처기업 수가 일반산업을 추월했다. 이는 벤처 생태계의 질적 성숙과 미래 지향성을 보여준다. 현재의 산업 지형은 인공지능(AI)과 기술 대융합 흐름 속에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AI는 바이오·우주항공·신소재·에너지 등 이종 산업과 결합해 전혀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으며 단일 기술의 완성도보다 융합 솔루션 역량이 시장 주도권을 좌우한다.

동시에 기후 위기, 고령화, 자원 고갈과 같은 글로벌 난제를 해결하는 ‘딥테크’ 분야가 산업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핵심 원천기술 확보는 기업 생존을 넘어 국가 안보의 문제로 부상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 뜨거운 교육열, 도전적인 국민성을 기반으로 딥테크 시대를 선도할 잠재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러나 기회만큼 과제도 크다. 여전히 실패에 대한 사회적·금융적 재도전 장치가 미흡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 기반도 부족하다. 인재·자본·시장 간 연결을 촉진하는 정책적 거버넌스 역시 보완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30년은 ‘벤처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달려 있다. 창의적 아이디어가 마음껏 실험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어릴 때부터 기업가정신 교육을 통해 미래 창업가를 길러야 한다. 실패를 자산으로 인정하고 재도전을 당연한 권리로 보장하는 ‘혁신의 안정망’을 마련해야 한다. 한 번의 실패가 영원한 낙오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에서만 잠재력 있는 인재들이 과감히 창업에 뛰어들 수 있다.

공공의 역할은 ‘혁신의 선순환을 위한 마중물을 붓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도전과 혁신의 DNA를 심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정책을 넘어선 구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교육 시스템 전환과 문화 혁신으로 기업가정신의 씨앗을 심고 산업과 법률의 개혁으로 새로운 산업이 싹트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혁신 성장을 위한 선순환의 출발점이다. ‘벤처의 대부’로 불리웠던 고(故) 이민화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이라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아마도 그는 잘 가꿔진 ‘정원’이 아닌 스스로 생존하고 번성하는 ‘밀림’ 같은 생태계를 이야기했을 것이다. 정부는 어떤 나무를 심을지 결정하는 정원사가 아니라 밀림이 우거질 수 있도록 햇빛과 비, 비옥한 토양을 제공하는 것이다. 다양한 생명체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협력하며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들 때 예기치 못한 거목이 자라난다.

미래 30년, 우리의 과제는 혁신의 밀림을 키우는 토양을 함께 다지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혁신과 도전을 응원하고 벤처인들이 과감히 앞장설 때 대한민국의 미래는 더 높이, 더 멀리 비상할 것이다. 벤처가 미래다. 그 길을 함께 열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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