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여러 차례 북한과 외교적 합의를 이룰 기회가 있었지만 한·미는 매번 때를 놓쳤습니다. 그 결과, 지금의 핵 위기가 현실이 됐습니다.”
조엘 위트 미국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은 지난 4일 중앙일보와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지금의 북한 핵 위기는 충분히 예방 가능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최근 출간한 저서 『폴아웃(Fallout·낙진)』을 통해 미국이 북한 비핵화에 실패한 배경을 분석했다. 위트 연구원은 30년 넘게 북한인, 미국인, 정부 관계자 등 300여명을 워싱턴, 베이징, 서울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저서를 집필했다.

위트 연구원은 최근 불발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회동에 대해선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정상외교를 추진한 건 잘한 일이지만, 지금 북·미 정상회담을 여는 건 또 다른 '실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저서 『폴아웃』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의 결정적 계기를 놓친 책임이 가장 크다고 지적했는데.
2009년 오바마가 취임했을 당시 북한의 미사일은 일본 정도만 겨우 사정권에 있었고 핵무기 보유량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트럼프 역시 정상회담 추진 자체는 옳았지만 2019년 하노이 회담에서큰 기회를 놓쳤다.

하노이에서 트럼프가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지만 않았어도 돌파구가 생겼을 거란 지적인가.
당시 약 10쪽 분량의 정상회담 결과물 초안이 마련돼 있었다. 그 안에는 수년간 미·북이 다뤄온 주요 의제, 즉 외교관계 수립과 평화협정 체결 등이 거의 모두 담겨 있었다. 남은 쟁점은 ‘비핵화’와 ‘제재 해제’였다. 김정은은 영변 핵 시설을 해체하는 대신 제재 해제를 요구했고 트럼프는 이를 거절했다. 이후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더 많은 시설을 해체하거나 아니면 더 적은 범위의 제재 해제로 타협하자고 제안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트럼프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에게 일곱 번이나 전화를 걸어 김정은과 다시 접촉하고자 그의 반응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미련을 보였다고 한다. 회담 결렬 후 김정은은 격노해 호텔로 돌아가자마자 문을 쾅 닫았다고 한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 북·미 정상회담은 일단 무산됐다.
2019년과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김정은의 목표는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고, 미국을 동북아에서 밀어내며,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것이다. 이런 요소가 결합하면 북·미 정상회담 자체가 위험한 이벤트가 된다. 트럼프는 자신이 김정은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과신하고 있고, 그를 제어할 참모는 이제 없다. 자칫 김정은이 "평화공존을 원한다"며 주한미군 철수를 제안하고, 해외 주둔 미군에 호의적이지 않은 트럼프가 이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비핵화’라는 목표에 대해선 ‘정교한 발놀림(fancy footwork)’이 필요하다고도 했는데.
외교 언어를 섬세하게 다뤄야 나쁜 결과를 막을 수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정교하게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런 신중함이 없다.
“북한은 이념적 행위자가 아니라 지정학적 행위자”라고 했다.
북한이 러시아·중국과 손잡은 건 단순히 트럼프와의 협상이 실패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못지않게 중요한 계기는 202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이다. 김정은은 여기서 ‘미국이 물러나고 중국과 러시아가 부상한다’는 신호를 읽었을 것이다. 이런 판단이 굳어지면서 지금의 대외정책 노선이 형성됐다. 그리고 그 선택은 북한에 엄청난 실익을 안겼는데, 특히 러시아와의 관계가 그렇다.

저서에는 최선희 북한 외무상을 수차례 만난 일화가 나오는데.
최선희는 처음부터 똑똑하고 유머 감각이 뛰어났으며 미국을 잘 이해하는 인물이었다. 2008년 힐러리 클린턴의 저서를 내게 언급하며 “읽어봤느냐”라고 물을 정도로 미국 정치에 밝았다. 그러나 최선희는 미국의 친구는 아니다. 그는 ‘트럼프를 정상회담장으로 다시 끌어내 스스로 실수를 하게 만들겠다’는 전략적 접근을 구상할 수 있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핵(원자력)추진잠수함 도입 추진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핵추진잠수함의 장점은 장기 잠항 능력(endurance)이다. 하지만 근해 작전엔 디젤 잠수함이면 충분하다. 핵잠의 군사적 효용은 한국이 원하는 방향과 다르다. 중국 견제에는 쓸모있을지 몰라도 북한 대응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트럼프 또한 핵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연료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쟁점이다.
만약 미국이 연료를 공급한다면 위험은 크지 않다. 하지만 한국이 자체 생산에 나선다면 매우 위험하다. 핵무기 개발로 가는 전 단계가 될 수 있어서다. 박근혜 정부 말 한국은 미국에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도 탐색적으로 제기(float)했다고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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