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바디스, 대한민국

2025-11-06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은 ‘한국’은행이다. ‘한국’은행법은 “‘대한민국’의 화폐단위는 원으로 한다”고 명시한다. ‘대한민국’의 화폐를 만드는 곳은 ‘한국’조폐공사이다. 모두 ‘대한민국’의 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지폐에는 한국인이 없다. 신사임당, 세종대왕, 이이 그리고 이황의 조선인만 있다. 미합중국의 지폐에는 미국인이 있고, 일본국의 지폐에는 일본인이 있고, 중화인민공화국의의 지폐에는 청인(淸人)이나 명인(明人)이 아니라 중국인이 있으며,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의 지폐에는 영국인이 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폐에는 북한인이 있다. 대한민국의 화폐에 한국인이 없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으로 건국하였으되 아직도 대한민국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대한민국이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 그만큼 아슬아슬하게 겨우 왔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건국 70년, 아직도 정체성은 미완

‘유사 좌파’와 ‘유사 우파’만 득세

여순 사건의 성격 규정이 시금석

‘무위’ 정신으로 사실을 직시해야

정체성 문제는 정체성의 주체로 존재하는 것, 대한민국 자체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갈등으로 나타난다. 대한민국 정치 갈등을 흔히 좌우의 대립이라고 이해하는데, 이는 대한민국의 실정을 실정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시각이다. 대한민국에 좌파다운 좌파가 어디에 있고, 우파다운 우파가 어디에 있는가. 좌파는 자신들의 핵심 가치가 인권임을 알지만, 북한 인권 앞에서는 입을 다물고, 우파는 우파가 책임져야 할 복지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다. 이처럼 유사 좌파(소위 좌파) 혹은 유사 우파(소위 우파)로 퇴락했다.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소위 좌파와 소위 우파를 가르는 최종적인 기준은 인권도 아니고 복지도 아니다. 결국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는가, 아니면 긍정하는가이다. 대한민국의 이런 정체성 문제는 입 밖으로 꺼내기를 두려워하는 나약한 소위 우파와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감춰가면서 이상을 이루려는 집요하고 전략적인 소위 좌파 사이에서 보일 듯 말 듯 하게 있지만, 마치 안전핀 뽑힌 수류탄을 손에 쥐고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대한민국을 긍정하는가 아니면 부정하는가를 가르는 지표는 매우 분명하다. 여순사건을 항쟁으로 보느냐 반란으로 보느냐이다. 김구 선생은 여순 사건 11일 후에 발표한 담화에서 “반란을 일으킨 군인과 군중”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반란임을 명시했다. 4·3과 여순 사건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제주4·3사건 사과 발표문’에서 4·3이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에서 기인했다고 적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남로당의 반(反)대한민국 행위가 4·3을 만들었고, 그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이 4·3이다”고 정리했다. 여순 사건 당시 그들은 여섯 개의 결정서를 채택하는데, 그 가운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수호와 충성을 맹세한다”와 “대한민국의 분쇄를 맹세한다”는 두 개만 봐도, 항쟁으로 보기보다는 반란으로 보는 것이 더 옳다. 관점이 어떠하더라도 진압과정에서 희생된 무고한 민간인의 명예 회복과 보상만큼은 세심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들은 반란을 진압하라는 대한민국 군대의 명령을 부당한 명령으로 치부하고, 여순 사건을 국가 폭력으로 규정한다. 반란을 진압하려는 대한민국 군대를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군대로 전락시킨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해괴한 상황이 문재인 대통령에서부터 이어지고, 더욱 강화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때부터 홍범도, 김원봉, 정율성 등 대한민국을 적으로 놓고 싸웠던 사람들을 떠받드는 일을 노골적으로 한다. 문재인은 대한민국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고 대한민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전복하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았던 반국가사범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 받들었다. 이는 해괴한 일이지만, 해괴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충분히 무장해있지 않기 때문에 정치 선동을 이겨낼 수 있는 절실함이나 강함을 갖추지 못해서 그들의 반대한민국 노선은 거침이 없다.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세력의 비굴함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이 자라는 토양이 되어버렸다.

사실을 공개적으로 왜곡하고도 오히려 당당한 힘은 어디서 오는가. 도덕적 확신에서 온다. 도덕적 확신은 왜곡된 사실이 주는 의미와 가치를 압도할 수 있는 정도로 크고 굳건한 이상을 가지고 있으면 생긴다. 그 이상은 혹시 최교진 교육부총리도 동의한 “애초 이 나라는 해방 정국의 현실을 그대로 두었다면, 사회주의 국가의 모범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에 담겨 있지 않을까?

잘 살려면 사실을 사실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노자는 이런 태도를 무위라 했다. 무위하면, 못 이룰 것이 없지만, 무위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 무위하지 않으면, 확증편향으로 산다. 확증편향에 갇히면, 효율성이 나지 않는다. 그러면, 개인에도 나라에도 망조가 드는데, 이는 여간해서 막을 길이 없다.

최진석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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