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이외에 중국도 안보 위협으로 간주한다는 선언
'美의 대중국 군사활동 동참' 약속으로 얻은 대가
'외교적 성과'를 거둔 것은 한국이 아닌 미국
안보구조 변화보다 '핵잠 보유'에 환호하는 여론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지난주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국내적으로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핵추진(원자력 추진) 잠수함이다. 세계 무역질서 혼돈기에 열린 이번 APEC의 의미와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 미·중 전략경쟁의 향방, 심지어 3500억 달러 규모의 한·미 관세 협상 결과까지 핵추진 잠수함이 압도해 버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용인해 달라고 공개 요청하고, 이튿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승인'하기까지 모든 것이 전격적으로 진행됐다. 언론과 국민 여론은 물론 서로 상대를 적으로 여길만큼 쩍 갈라져 싸우던 정치권도 이 소식을 환영했다.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갖게 된다는 것은 '신무기 장착'과 또 다른 차원의 안보적 의미가 있다. 한국의 안보 위협이 북한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핵추진 잠수함은 한국의 안보 수요를 초과하는 무기체계다. 군사 전문가들은 한반도 해역과 연안에서 북한의 위협을 견제하는 역할은 핵추진 잠수함보다 재래식 디젤 잠수함을 촘촘히 배치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갖는다는 것은 북한 이외에 다른 안보 위협(중국)에 대비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2021년 미국, 영국, 호주 3개국이 오커스(AUKUS)를 결성하고 호주에 핵잠수함을 허용했을때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안보 관련 분야의 전직 미국 관리에게 '호주에게는 핵잠을 허락하면서 한국에게는 왜 안 주는가'를 물은 적이 있다. 그는 "한국 해군이 대만해협, 남중국해까지 활동범위를 넓힌다면 미국은 내일이라도 당장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중국 견제에 앞장서는 첨병 역할을 한다면 미국은 선뜻 허용할 것이라는 취지였다.
이 대통령은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이나 중국 쪽 잠수함 추적활동'을 위해 핵추진 잠수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미군의 부담도 상당히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이 미국을 대신해 중국의 군사활동을 견제하는 역할을 기꺼이 할 것이라고 천명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미국이 2010년대 초반 '아시아 회귀'를 선언하며 중국을 본격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한 이래 한국으로부터 가장 듣고 싶어했던 말이다. 정부와 국내 언론은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승인받은 것을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하지만, 실제로 성과를 거둔 것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이번 일은 단순히 한국이 진전된 무기체계를 갖추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의 대통령이 북한뿐 아니라 중국까지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함께 대중국 군사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공개 선언한 것은 한반도 안보 구조의 커다란 변화를 예고한다.
이제 한국이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는 동시에 경제를 중국에 의존하면서 균형을 유지하려 했던 시대는 끝났다. 한·미가 추진하는 '동맹 현대화'의 핵심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와 역할 변경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한국은 미국의 아시아 안보전략을 함께 수행하는 파트너가 됐다.
한국은 핵추진 잠수함이라는 무기체계를 갖는 대가로 새로운 안보 리스크를 안아야 한다. 뒤어어 일본이 나서게 되면 동북아에 군비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 한반도 주변에서 군비경쟁이 가속화되고 대결구도가 짙어진다면 가장 큰 피해를 볼 나라가 한국이라는 점은 이미 역사가 보여준 바 있다. 남북관계는 더욱 어려워졌고 뇌사 상태로 숨만 붙어 있던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확실하게 사망 판정을 받았다. 언필칭 진보 정권이 이같은 안보 구조 변화를 수십 년간, 그것도 북핵 능력이 지금처럼 고도화되기 훨씬 전부터 '숙원 사업'으로 여겨왔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핵추진 잠수함 도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톱다운 방식'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국내적 저항에 부딪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도입이 되든 안되든, 한국 대통령이 중국을 안보 위협으로 천명한 것은 되돌릴 수 없다.
국내 여론은 핵추진 잠수함 도입이 가져올 안보환경 변화와 후과에 대해서는 아직 큰 관심이 없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이 있다면 이번 일은 국내 정치적으로는 엄청난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여기에 더해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하고 '농축·재처리' 권한을 확대하려 한다. 이 역시 한국에 실익은 별로 없다. 그러나 여론이 '잠재적 핵능력'을 가질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것에 주목한다면 또 한번 엄청난 정치적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안보 사안이 지나치게 포퓰리즘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opento@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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