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다가온 AI의 시대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엇갈리는 전망에 대한 의견을 묻자,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는 이렇게 우문현답했다. “(우리가) 좀 더 열려 있고 좀 더 남을 포용하는 사람이 되면, (우리를 통해 배우는) AI도 비슷해질 것”이니 결국 “AI의 미래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권 교수는 자신의 말처럼 “AI 전문가는 아니다”. 분단에서 시작해 냉전을 거쳐, 최근에는 지구환경·생태 문제에 천착해온 세계적인 인류학자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인류학 관점에서 통찰한 『학살, 그 이후』(2012년 국내 번역 출간)로 2007년 ‘인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기어츠상을 받았고, 2022년 한국학자 최초로 120년 역사의 영국 국립학술원 회원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그렇게 천상 인문사회과학자인 그가, 오는 4~6일 경북 안동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제8회 세계인문학포럼에서 ‘AI와 사회적 영혼(Social Soul) 사이’를 주제로 기조 강연에 나선다. 오늘날 인류학자는 ‘AI의 미래’를 어떻게 바라볼까. 포럼을 앞두고 지난달 29일 서울 교대역 인근에서 만나 직접 물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약.
인류학자가 AI 강연을 한다.
원래 기술 혹은 디지털 시대를 연구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 당면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인류학자의) 책무니, AI를 무시할 수는 없다. 이해하고 참여하려 조금씩 (연구)했다. 세계인문학포럼의 초청을 받고 고민했는데, 고향이 안동이기도 해서, 한번 부딪혀 보기로 했다.
AI에게 영혼이라니, 무슨 의미인가.
요즘 AI의 화두는 지능이다. 기계의 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앞지를 것이냐만 이야기한다. 20세기 인문사회과학의 역사는 지능을 언급하지 않았다. 인간을 인간으로 정의하는 것은 영혼 혹은 의식(consciousness)이라고 봤다. 지능은 사람에 따라 높을 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지만, 영혼은 누구나 평등하게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혼은 개인과 사회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인문사회과학자는 ‘사회적 영혼’ 혹은 ‘집단적(collective) 의식’에 관심이 있다. 사회적 영혼은 개인을 넘어 부족사회, 국가사회, 더 나아가 세계사회를 포괄한다. 이렇게 충돌하는 지능과 영혼 사이의 관계, AI 업계와 인문사회과학계의 소통 가능성 등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AI도 영혼 혹은 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보나.
AI 연구자 가운데도 의식에 관해 얘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AI가 사람과 오래 관계하다 보면, 점점 인간의 의식 세계에 대해 배우고, 그것을 자기 지능에 포함하는 쪽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본인 생각은.
상당히 접근할 거라고 본다. AI가 아주 똑똑해지고 인간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면, (인간의 영혼도) 이해할 수 있지 않겠나. 물론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진 영혼과 기계가 노력해서 갖는 그것이 같을 것인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앞서 말했듯 영혼은 평등하지만 지능은 위계적이다. 우리가 보편적이고 평등한 영혼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해도, 점점 지능의 위계(hierarchy) 위로 올라갈 AI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인간이 경험을 통해 사회적 영혼을 갖는 데 반해) 기계는 경험을 안 하지 않나. 인간의 얘기만 듣고, (사회적) 경험이나 부딪힘 없이 과연 지능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에 의구심이 있다.
인간의 영혼과 비슷해지겠지만 똑같지는 않을 거다?
그쪽이다. 하지만 (달라질) 가능성에 대해 완전히 문을 닫는 건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AI의 텍스쳐(texture, 질감ㆍ특성)도 바뀌지 않을까. 어떤 사회가, 어떤 의식으로,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AI의 미래 방향성도 달라질 수 있을 거다.

AI가 인간에 따라 달라진다면, 인간의 나쁜 점을 따라 배울 수도 있지 않나.
그게 핵심이다. 그러니까 AI의 미래를 우리 인간과 세계에 득이 되는 미래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지금 세계에 사는 인간들이, 전쟁과 파괴를 극복하고 자기중심적 세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20세기에는 유엔ㆍ유네스코 등 국제 협력을 통해 수 세기 동안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저질렀던 (전쟁 등) 죄악에서 벗어난 세계를 만들려 했다. 그런 이상을 계속 추구하면서, 얼마나 노력하고 어떤 성과가 있느냐에 따라, AI의 미래도 달라질 거다. (인간을 통해) 배우는 기계니까, 우리가 먼저, 좀 더 열려 있고 좀 더 남을 포용하는, 세계인으로서의 사람이 돼야 한다.
사기업이 만드는 AI에 그런 공공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규제라고 하면 옥죄는 느낌이다. 규제가 아니라 (공공 부문이) 참여(engage)해야 한다. 개인 회사가 개발하더라도 퍼블릭(공적인) 정책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게 이 퍼블릭의 의미가 같지 않다는 거다. 가령 미국 캘리포니아(실리콘밸리)에서의 퍼블릭과 중국에서의 퍼블릭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
그럼 현실적으로 힘든 것 아닌가.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퍼블릭이 소통해야 한다. 퍼블릭이 좀 더 퍼블릭해져야 한다는 거다. 그런 점에서 AI를 (사회적 영혼이 있는) 인간화하는데, 한국이 기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디지털 기술이 발달해 있다. (AI 생태계의) 인프라스트럭쳐(하부구조)에 참여하고 있고 이제 그것을 넘어 슈퍼스트럭쳐(상부구조)에도 참여하려는 상황이다. 현재 AI를 주도하고 있는 곳들처럼, 너무 방만하지도, 너무 권력이 집중화돼 있지도 않다. 인간의 사회ㆍ정치적인 삶에 대해 고민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역사도 갖고 있다.
AI의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보는 견해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유토피아적인 얘기보다 디스토피아 적인 얘기가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올 세계이고 어차피 우리가 감당해야 할 세계인데, 디스토피아 적인 얘기를 들어야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겠나. 가령 정부가 ‘AI에 올인하자’고 할 때, 어떤 식으로 올인하나 모니터링할 수 있고, 공공영역에서 토론도 할 수 있을 거다. 그런 식으로 AI와 사회적 관계가 활성화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같이 살아야 할 이웃인데, 이 이웃(AI)을 어떻게 할 것인가, 기존 이웃들끼리 반상회 비슷하게 얘기를 계속해나간다면, 그것을 통해 우리 민주주의가 심화될 수 있다면, AI에게 고마운 거 아닌가. AI가 뭐가 중요한가? (AI와 함께 살아갈) 사람이 중요하다.
제8회 세계인문학포럼의 주제는 ‘AI 대전환의 시대의 인문학: 공존을 위한 모색’이다. 권 교수 외에 모로코 모하메드6세폴리테크닉대(UM6P)의 모하메드 알리 벤마크루프 교수, 한국 태재대의 염재호 총장이 각각 ‘AI와 인간 대화의 도전’ ‘인간과 AI의 공진화’를 주제로 기조 강연을 한다. 세계 21개국에서 150여 명의 학자가 참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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