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경제와 정치가 갈 길은 먼데 날은 저물고 있는 ‘일모도원(日暮途遠)’ 형국에 빠졌다. 기업들은 미중 통상 전쟁의 거친 파고를 헤쳐나가기도 버거운데 집권 여당은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주 4.5일제와 정년 연장까지 곧 도입할 태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3.2%로 전망하면서도 한국 경제는 0.9%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국회는 국민들에게 비전과 희망 대신 절망과 한숨을 안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권력에 취해 민심을 무시하고 국민의힘은 여전히 탄핵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있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2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경제는 ‘잃어버린 20년’을 지나고 있다”며 “단기 성장에 취해 개혁 작업을 미룬 것이 잃어버린 20년의 원인이자 본질”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강성 지지 세력에 아부하는 ‘정치 과잉’ 시대를 끝내고 국가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과 정책’ 시대로 조속히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정부 때 재정경제부 차관과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했고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 이사장은 “굳건한 경제 동맹이었던 미국이 되레 한국을 압박하고 추격자로 여겼던 중국은 우리를 추월하고 있다”면서 “구조 개혁을 서둘러 미중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는 ‘자강(自强)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우리나라 경제를 어떻게 진단하나.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을 겪고 있다고 얘기하는데 우리 경제는 ‘잃어버린 20년’을 지나고 있다고 본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후 한국 경제는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 선진 경제로 진입했다. 그러나 환란 이후 과감하게 진행된 개혁 기조가 2000년대 들어 중단되며 ‘선진 도상국(先進途上國)’ 경제로 다시 내려 앉았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 세계 GDP의 2%라는 두개의 벽에 오랫동안 갇히고 말았다. 노동과 연금·교육·의료 등 4대 부문 개혁에 속도를 내고 장기 전략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이념 논리에 빠진 역대 대통령들이 개혁을 미뤘다. 지난 20년에 걸쳐 대통령 집권 5년마다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씩 떨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단기 성장에 취해 개혁 작업을 미룬 것이 잃어버린 20년의 원인이자 본질이다.
-여당이 주 4.5일제 근무와 정년 연장도 입법화하려 하는데.
△강성 노조 지원에 힘입어 집권한 여당이 노동 편향 입법을 양산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다. 노란봉투법을 비롯해 중대재해처벌법과 상법 개정안을 일방 처리한 데 이어 주 4.5일제와 정년 연장도 추진하려 한다. 생산성이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근로시간만 줄이는 것은 우리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자충수에 다름 아니다. 제조업 강국이었던 독일·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의 경쟁력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는 것은 과도하게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복지 혜택을 늘렸기 때문 아닌가. 한국 경제가 유럽 전철을 따라가려 한다. 생산성이 정체된 상태에서 임금은 외려 올라가는 구조에서 어떤 기업이 생존을 장담할 수 있겠는가. 주 4.5일제는 우리 경제와 기업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기업을 해외로 몰아내는 악법이다. 기업 옥죄기 정책과 법안이 양산되면 기업들의 해외 이탈은 더욱 속도를 낼 것이고 우리 경제는 제조업 공동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정치 실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한국 정치는 정쟁을 교묘하게 이용해 사익을 챙기려는 ‘악화(惡貨) 정치꾼’이 선량한 ‘양화(良貨) 정치인’을 구축하는 왜곡된 생태계에 빠져들고 있다. 의원들이 전문 지식과 통찰력을 갖고 승부를 걸어야 하는데 강성 지지 세력을 바라보며 상식 이하의 발언을 쏟아내면서 볼썽사나운 행태를 보이고 있다. 조금이라도 양보하거나 타협에 나서면 ‘배신자’ 낙인이 찍힌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셤의 경제법칙이 우리 국회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현실이 너무 한심하고 안타깝다. 정치가 나라를 진화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권력을 유지하는 기술로 전락할 때 우리 사회는 집단 허무에 빠진다.
-국정 운영의 최종 책임자는 결국 대통령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정치는 양쪽 극단을 버리고 균형을 찾아가는 예술이다. 그러나 박근혜·문재인·윤석열 등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강성 지지층의 힘으로 당선됐고 이재명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극단의 강성 지지층은 탄탄한 권력 기반이 되는 동시에 국정 운영의 족쇄도 될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상대 진영의 비판 목소리를 포용하지 못하고 내부 결속에 매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통령이 균형 감각을 잃고 진영 논리에 빠지면 독단과 독선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한쪽으로 치우치는 ‘시계추’ 국정운영을 해서는 안 되고 중간에서 균형 감각을 갖고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정치 중심이 흔들리면 경제정책 균형도 함께 무너진다.
-정부의 돈 풀기 확장 재정 기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국가 재정은 이미 위험 수위에 달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채무비율이 50%를 넘었고 지금 기조를 이어간다면 이재명 정부에서는 60%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재정 확장은 위기 극복을 위한 일시적 수단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상시적 포퓰리즘 도구로 변질됐다. 복지 확대와 현금 지원이 경쟁적으로 이뤄지면서 재정 건전성이 빠르게 훼손되고 있다. 지금의 재정정책은 지속 가능성보다 단기적 정치 이익을 우선한다. 돈 풀기보다 구조 개혁이 우선이고 복지보다 성장 기반을 다지는 것이 시급하다. 재정 건전성이 흔들리면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고 우리 경제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질 수 있다.
-원전과 에너지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환경과 에너지를 한 부처에 묶은 것은 아주 잘못된 선택이다. 정책과 규제가 본질적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산업의 뼈대이자 생산성의 기반인데 환경 논리로만 접근하면 산업 경쟁력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원전은 AI·반도체·데이터 산업의 필수 인프라다. 안정적 전력 공급이 안 되면 첨단산업 전체가 흔들린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산업 정책 차원이 아니라 정치 논리에 맞춰져 있다. 신재생에너지 정책은 명분은 있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 원전은 기술적·경제적 측면에서 가장 효율적인 탄소 중립 수단인데 이를 배제하면 국가 경쟁력의 근본이 흔들린다. 에너지는 환경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생산성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탈원전과 친환경이라는 허울 좋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에너지 안보와 산업 지속성을 중심으로 에너지 정책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막바지 단계에 있다. 트럼피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국가자본주의’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중국 모델을 닮은 것으로 한국·일본·유럽연합(EU) 등 시장경제와 충돌하고 있다. 미국의 국부가 한국 등 동맹국과 해외로 유출됐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통상 압박과 관세 부과를 통해 미국으로 동맹국의 부를 이전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미국의 글로벌 신뢰 자산을 크게 훼손할 것이다. 한국은 트럼프식 국가자본주의와 신뢰 파괴의 후폭풍을 체감하고 있다. 이제부터 한국은 미국에 대한 맹목적 의존 관계에서 벗어나 자강 비중을 높이면서 전략적 대외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단순한 동맹 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신뢰와 이익을 기반으로 한 ‘전략적 협력’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중국 경제의 추격과 추월이 무섭다.
△중국은 더 이상 우리 경제의 보완적 존재가 아니라 최대 경쟁자다. 과거에는 한국이 핵심 부품과 소재를 공급하면 중국이 이를 조립·가공해 수출하는 분업 구조가 형성돼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기술력과 산업 역량을 급속히 끌어올려 한국의 주력 산업을 턱밑까지 추격했거나 일부 분야에서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독일·미국까지 추월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를 비롯해 배터리·디스플레이·전기차 등에서 정부 보조금과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한국을 추월하거나 대체하고 있다. 미국 통상 압박에 맞서 중국이 일대일로 국가들을 중심으로 ‘레드 공급망’을 완성하면 한국의 수출 기반은 더욱 약화될 것이다. 철강과 석유화학 분야에서 이 같은 조짐이 벌써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의 생존 전략은 무엇인가.
△지금 세계 질서는 ‘복합 전환기’에 있다. 자강(自强)만이 살 길이다. 자강이란 외부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줄이고 스스로의 경제력과 국방력을 키워 스스로 주권과 생존권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자강은 이념론자들이 주장하는 자주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이 과거와 같은 도덕적 리더십을 상실하고 신뢰를 훼손함에 따라 한국은 더 이상 맹목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전략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경제적 협력을 지속하면서도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중국 의존도를 줄여나가면서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 He is…
1948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서울 배재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제10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재무부 경제협력국장, 국제금융국장, 재정경제원 제2차관보 등을 거쳤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 협상 수석 대표로 활동하며 위기 극복에 선봉장 역할을 했다. 김대중 정부 때 재정경제부 차관과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했고 제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의원을 지냈다. 서울대 국제금융연구 소장과 중국 베이징대와 런민대에서 초빙 교수를 지냈다. 2007년 의원직을 사퇴한 뒤 재단법인 니어재단을 창립해 굴지의 싱크탱크로 발전시켰다. 주요 저서로는 ‘거대 중국과의 대화’ ‘외환위기 징비록’ ‘한국을 보는 중국의 본심’ ‘기로에 선 북중관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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