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때도 뜨거웠던 교육열…경제강국 이끈 '산업전사'들 낳았다 [창간기획 '대한민국 트리거 60' ㊹]

2025-10-27

대한민국 '트리거 60' ㊹ 초등 의무교육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를 밑돌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한국은행 등 국내외 주요 기관들의 예측치다. 성장률 0%대는 역사적으로 낯설지 않다. 전 세계는 1700년대 말까지 수백 년에 걸쳐 연평균 0%대의 제로성장을 지속했다. 영국 경제학자 맬서스는 1798년 『인구론』에서 식량 생산보다 인구 증가 속도가 높기 때문에 결국 경제는 사람들이 겨우 먹고사는 빈곤 수준에서 정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맬서스의 우울한 예언은 영국에서부터 빗나가기 시작했다. 1700년대 후반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영국은 천년 묵은 제로성장을 깨뜨리고 ‘양의 성장’에 시동을 걸었다. 이후 성장의 물결은 미국·유럽·일본 등으로 전파됐고, 마침내 1960년대 초 한국에 상륙했다. 특히 한국은 장기성장률이 연평균 8~9%대로 순식간에 점프하며, 그전 어떤 나라도 이루지 못한 초고속 성장을 이어갔다.

경제학자 로스토우가 ‘이륙’이라고 명명한 이러한 대전환은 산업화에 기인한다. 고용과 생산의 축이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옮겨갔다. 전통 농업에서는 농부의 육체노동이 주요 생산요소였지만, 제조업에서는 기계와 함께 인간의 지식노동, 달리 표현하면 ‘인적자본(human capital)’이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시카고대 루카스 교수는 현대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인적자본을 꼽았다. 인적자본이란 교육 등을 통해 근로자나 기업가가 축적한 지식이나 기술을 의미한다. 1960년대 초반 시작된 한국경제의 고속성장도 그 이전에 쌓인 인적자본이 밑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한마디로 양질의 노동력 덕분이다.

교육 예산의 80%, 의무교육에 투입

1960년대 우리의 인적자본은 어떻게 축적했을까. 자원과 자본 모두 보잘것없던 한국이 오늘날 경제강국으로 떠오른 가장 밑바탕에는 남녀 차별 없는 초등학교 의무교육 시행이란 디딤돌이 있었다. 교육은 예부터 한국사회의 키워드였다. 전통 유교사회에서도 교육을 ‘백년대계’라고 중시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 양반 계층에 제한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교육이 득세했다. 1945년 해방을 맞았지만 당시 문맹률은 80%에 이르렀다. 이른바 ‘까막눈’ 세상이었다.

나라의 기틀을 잡아야 했던 해방정국, 교육제도 정비는 화급한 과제였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정착을 위해선 교육이란 토양부터 다져야 했다. 1948년 제헌헌법에서 이미 ‘초등교육은 의무이며 무상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의지도 강했다. 1949년 교육법을 만들며 초등 6년 의무교육을 법제화했다. “교육은 자유민주주의의 뿌리이며, 배우지 않는 국민에게 민주정치는 공허하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으로 주춤했던 의무교육이 본격 궤도에 오른 것은 1954년 전후 재건 시기부터다. 1959년까지 6년간 의무교육을 강력히 추진했다. 교육세·의무교육재정교부금법 등을 제정하고, 문교부 예산의 약 80%를 초등교육에 쏟아부었다. 1948년 정부 수립 당시 75%에 그쳤던 초등학교 진학률이 1959년 96%까지 올라갔다.

의무교육 시행은 현대 한국 교육개혁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다. 시민의식 함양과 함께 60~70년대 산업화의 견인차 구실을 했다. 한국경제의 ‘이륙’ 단계에서 결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했다.

65년부터 88년까지 한국과 미국의 경제성장과 조세정책을 비교한 적이 있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장기성장률에서 한국이 5%포인트 앞섰는데, 특히 한국은 미국에 비해 근로소득세 비율이 월등히 낮았다. 미국의 유효세율(근로소득세-정부교육보조금)이 17%인 반면, 한국은 마이너스 9%였다. 26%포인트나 차이가 났다. 국민에게 상당한 교육보조금을 지급하며 사람을 키우는 데 열심이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는 국어·산수 등을 익혀 인적자본을 크게 늘린 노동력이 1950년대 후반 이미 형성돼 있었다. 글 읽는 능력을 배운 그들은 지식을 쌓는 기본 수단을 획득했다. 또 산수를 배우면서 합리적 경제활동의 바탕이 되는 계산 능력까지 습득했다.

이러한 양질의 노동력은 서울·부산 등 대도시뿐 아니라 농촌과 시골 각지에서 형성됐다. 전후 베이비 붐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노동력이 증가하면서, 나라 전체적으로 새로운 인적자본을 갖춘 잠재적 근로자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들이 초등 6년을 마치고 도시를 기반으로 한 제조업에 공급되기 시작하면서 60년대 산업화에 불이 붙었고, 국가경제도 질적·양적 성장을 거듭했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맨체스터의 섬유산업으로부터 시작한 것과 유사하게, 한국의 산업화도 섬유산업에서 출발했다. 섬유산업은 60년대 한국의 수출 1위 산업을 한동안 유지했다. 시대를 반영하듯 가수 한명숙이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불러 공전의 히트를 했다. 기존의 한복에서 샤쓰(셔츠) 같은 서양 의복으로의 의생활의 변화와 이를 뒷받침하는 한국 섬유산업의 부상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노래였다.

섬유산업의 핵심 인력은 여성 근로자들이었다. 당시 섬유산업은 상대적으로 임금이 싼 여성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컸는데, 50년대 농촌 지역에서 보편적 의무교육을 마친 우수한 여성인력이 이를 충족시켜 줄 수 있었다. 이들이 도시의 섬유산업에 대거 투입되면서 60년대 초부터 장기성장률이 8%대로 급격히 증가했다.

필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안양에는 금성방직이라는 큰 방직공장이 있었다. 충청·전라·경상도 등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여성 근로자 3000여 명이 일했다. 이들은 적은 월급이지만 열심히 저축했다. 물론 당시 근로조건은 열악했다. 근로자들은 2교대·3교대 근무를, 또 고통스러운 야간 근무나 장시간 근무를 버텨내야 했다. 당시 이미자씨가 불러 크게 히트했던 노래 ‘울어라 열풍아’가 있다. 이 노래 가사 중 ‘울어라 열풍아, 밤이 새도록’을 여성 근로자들이 ‘울어라 미싱아, 밤이 새도록’이라고 개사해 부르는 것을 어렸을 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식과 기술 갖춘 양질의 노동력

여성 근로자뿐이 아니다. 60년대 경공업에서 시작해 70년대 중화학공업까지 한국 산업현장에는 의무교육 과정을 거친, 즉 기초지식과 기술을 갖춘 노동력이 풍부했다. 이들 근로자는 월급의 일부를 고향에 부쳤고, 그 덕에 중고교, 나아가 대학을 나온 시골의 동생들은 더 높은 소득을 벌고, 이후 다른 가족의 교육과 생계에 도움을 주었다. 초등교육을 마친 근로자들의 땀과 눈물에서 시작한 가족 내의 ‘인적자본 축적의 선순환 구조’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인적 재투자가 60년대 이륙기를 거쳐 70~80년대 도약기까지 계속됐다. 교육이란 사다리를 타고 사회적·경제적 상승을 꿈꿨던 한국인의 남다른 교육열은 말할 것도 없다.

20세기 한국의 경제발전은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 덕분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이는 50년대에 도입된 의무교육을 통해 인적자본을 축적한 국민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60년대 쾌속성장이 군인 출신 박정희 정부의 출발 시기와 겹쳐 박 대통령의 업적으로만 이해하는 사람도 많지만,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초등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든 수많은 근로자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어린 시절 보았던 그 ‘여공’ 누나들이 한국 경제성장의 이름 없는 주역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의 무상 의무교육은 2004년 전국 중학교까지 확대됐다. 고등학교까지의 확대도 추진 중이다. 현재 의무교육이란 단어는 거의 의미가 없을 만큼 한국인의 교육에 대한 열기와 투자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도 왜 경제는 21세기 들어 계속 기를 펴지 못하는 걸까. 20세기의 교육방식, 즉 모방과 암기식 공부의 시대는 끝났기 때문이다. 20세기형 인적자본이 아닌 21세기형 인적자본을 키우는 데 우리가 게을렀기 때문이다.

사회는, 시대는 급속하게 달라졌는데 우리는 아직도 과거를 잊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투자해 왔다. 지금은 교육에서도 급변침이 필요한 때다. 개발·성장 시대에 대한 향수는 이제 독사과가 됐다. 인공지능(AI) 시대를 이끌어가는 창의적 인적자본 형성에 지혜를 모을 때다. 70여 년 전 의무교육 도입 당시보다 더욱 절박한 과제다. 모두(冒頭)에 언급한 한국의 제로성장 터널을 빠져나갈 묘수도 바로 그곳에 있다.

창간 60주년 기획 '대한민국 트리거 60'은 아래 링크를 통해 전체 시리즈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은 ‘누리호, 날아오르다’ 편입니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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