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연속 진단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64) 일본 총리는 지난 21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일본에 매우 중요한 이웃”이라며 “일·한 관계는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에서 다카이치로의 리더십 교체에도 양국은 일단 협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과거사 문제 등 뇌관은 여전하다. 한·일 정치적 전환기에 맞춰 한반도평화만들기(이사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는 지난 23일 ‘이시바 이후의 한·일관계’를 주제로 한일비전포럼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 등을 고려해 한·일이 전략적 협조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강경 보수 다카이치 내각 출범
기시다·이시바 정권 기조 계승하고
한국 자극하는 과거사 이용 말아야
한·일 협력 확대가 양국 국익에 도움
자민당 1강 체제 끝나고 다당제 시대

▶박철희 전 주일본 대사(발제)=일본은 아베 시대의 안정된 정치에서 불안정한 패러다임 시기로 넘어가는 정치적 전환기다. 자민당 1강 체제는 종언을 고했고 다당제로 접어들었다. 다카이치의 자민당 총재 당선은 자민당 보수우파의 회귀와 ‘보수 리버럴’의 패퇴를 뜻한다. 온건 보수에서 강경 보수로 ‘우(右)선회’하는 것이다. 다카이치는 지방표 다수를 거머쥐고 아소 다로(麻生太),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와 연합해 의원표 상당수를 획득했다. 이른바 ATM(Aso-Takaichi-Motegi) 연합이다. 자민당 총재 선거 뒤 공명당이 연립 정부에서 이탈한 배경엔 자민당의 오만과 방심, 동반 추락을 피하기 위한 공명당의 셈법 등이 있다. 일본 유신회와 연립 정부를 꾸린 뒤 고이즈미 방위상 등을 내각에 끌어들여 당내 통합을 꾀했고, 참정당이란 잠재적 우군도 있지만 다카이치 정권은 상당한 유동성을 안고 있다. 여전히 소수 여당인 점, 그리고 우파 성향이 강해질 경우 중도 야당 간 강한 협력에 부닥칠 수 있다는 건 불안정한 요소다. 다카이치는 집권 초반 안전운행 모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일 간 협력 기조를 전환할 만한 인센티브가 크지 않다. 미국의 압력, 중국의 공세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해 한·일 국제 공조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역사와 영토 문제가 현안으로 부각하거나 일본의 대북 억지 강화 기조가 강화한다면 한국과의 국가전략 정합성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엄중한 국제환경
…
셔틀외교 적극 활용
▶신각수 전 주일대사=최근 한 달간 일본 전국이 표류하는 시기에 접어든 것 같다. 오사카에 기반을 둔 유신회와 각외 협력이란 형태로 연립했기 때문에 불안정성을 가지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다카이치 내각의 최우선 과제는 물가였다. 정치자금, 사회보장, 외국인 정책, 외교·안보, 헌법 개정이 뒤를 이었다. 관세 대응은 큰 이슈가 되지 못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다카이치는 안보 면에선 강경 보수다. 이재명 정부가 북한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일 경우 온도 차가 있을 수 있다. 역사 인식에서도 한국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일본이 처한 엄중한 국제 환경을 고려할 때 한국과의 관계를 훼손하거나 악화할 언행은 자제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한·일 셔틀외교라는 귀중한 외교 자산을 잘 활용해 신뢰를 더 축적해야 한다.
▶이창민 한국외국어대 교수=다카이치가 아베노믹스를 계승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금리 인하를 주장하지만, 중앙은행을 중시하는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가 브레이크를 걸 것으로 생각된다. 다카이치는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생각보다 조화롭게 국정을 이끌어갈 것으로 예측된다. 다카이치의 애독서 중에 『공기의 연구』가 있다. 일본의 분위기(공기)를 읽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것에서 다카이치의 철학이 나온다는 얘기다. 알려진 것처럼 독불장군식 운영은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자민당 힘 약화는 일본 정국 불안 요인
▶손석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2012년 아베 정권이 출범한 뒤 여섯 번의 선거에서 당시 야권은 계속 분열됐다. 이때 자민당은 그냥 이기는 선거라고 해석한 듯하다. (연립 정부를 이루는) 공명당이 고마운 존재라는 걸 잊었던 거다. 선거에서 투표율은 낮지만, 최근 들어 유권자의 유동화 현상이 엿보인다. 자민당 스스로의 조직표가 축소된 가운데 ‘자공(자민당+공명당 연립 정부)’ 시대의 종언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일본 정치가 어떻게 정리가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박홍규 고려대 교수=한·일 관계의 변수는 돌발성이다. 다카이치 정권이 오른쪽으로 가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다만 돌발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한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가 중요하다. 이재명 정부가 지지 기반인 진보진영을 컨트롤할 수 있을 정도의 단호한 대응을 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조만간 (일제에 의한) 피해 생존자가 없는 시대가 도래할 거다. 기존 목소리와는 결이 다른 목소리나 행위가 나올 수 있다.
▶신현호 해울 대표변호사=강제 징용 등 소송은 앞으로도 이어질 거다. 한국 사회는 세월호, 이태원 참사 등과 관련해 특별법을 만들어 사회적 갈등을 해소했는데 강제 징용 부분은 지지부진한 것 같다. 법조계에도 강제 징용, 위안부 피해 특별조사위원회 같은 것이 있다. 일본에서 이런 논의를 하는 조직이 있다면 공동 심포지엄을 진행하면서 여론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근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일본과의 관계는 다층적이기 때문에 대응도 개별 이슈를 따로 처리하는 ‘살라미’로 가야 한다. 한 가지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일본과의 관계를 전반적으로 다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곤란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응하면서 일본을 먼저 방문해 노하우를 얻었고, 그 결과 성과를 거두지 않았나. 앞으로 지속할 미국의 압력 등에 대해 한·일 간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민감한 문제와 협력할 일 따로 대응을
▶권태환 한국국방외교협회 회장=다카이치는 취임 뒤 3대 안보문서를 개정하겠다고 했다. 개정한 지 3년밖에 안 됐는데 고치겠다는 것이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내건 임기 내 전시작전통제권 회복, 일본과도 연결된 유엔사 문제, 그리고 한미연합사 문제 등과 근본적인 온도 차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박문수 미래와가치 회장=내정 불안이 닥치면 다카이치는 대외적으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역사 등 한·일 문제를 거론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여기에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사전에 고민해야 한다.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처음으로 여성이 총리가 되는 것을 보고 일본 사회가 변했다는 걸 느꼈다. 일본인의 인식구조가 바뀌었다는 걸 유념해야 한다. 독도는 영토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강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 다만 강제징용 등 문제는 우리 입장을 차분히 생각해 어느 정도로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컨센서스를 확립해야 앞으로 이어질 불확실성을 헤쳐나갈 수 있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한·일 관계에서 우리 대응이 투트랙 전략으로 가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비빔밥처럼 섞어서 ‘일본은 나쁜 국가다’라는 식으로 가면 안 된다.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해 사안 하나하나마다 개별적으로 냉철히 보고 국익을 위해 어떠한 최적의 방안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일본 보수 회귀에도 우리는 의연해야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일본은 미국·영국·프랑스와 달리 혁명도 없었고 좌파 정권이 집권한 적도 없었다. 일본 보수정치의 생명력은 일본인의 수명만큼 길다. 정치권에서 일본 보수정치의 연속성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다. 현재 한·일 양국 정부 구성원을 보면 모두 1945년 8월 이후 태어난 이들이다. 문자 그대로 미래지향을 할 수 있는 세대다. 여기에 기대를 걸어 본다.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다카이치 정권의 등장은 위기 요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핵잠수함을 도입하려 한다. 2013년의 아베 전 총리처럼 야스쿠니신사를 기습 참배할 수도 있다. 이재명 정부는 강경 대응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지방선거와 총선을 앞두고 반일 노선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내각이 흔들리더라도 우리는 국익을 위해 중심을 잡고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홍석현 한반도 평화만들기 이사장=미국 관세에 대응할 때 한국의 가장 큰 카드는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다. 미국은 해군력이 세계 1위지만 배를 만들고 수리할 능력을 잃었다. 미국을 도울 수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 이 점에서 한·일이 협력하고 공동 전선을 펼 여지가 있다. 일본 내 안정적 정치환경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낮은 점을 고려해 이재명 대통령은 포용력을 발휘해 일본을 리드해야 한다. 시장과 산업 구조 생태계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정치력이 양국에서 발휘된다면 1 더하기 1이 3 이상이 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재계가 앞장서고 정치가 뒷받침하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좋을 것이다.
◆한반도평화만들기=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하기 위해 2017년 11월 출범했다. 산하의 한일비전포럼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실질적이고 전략적인 해법을 찾고 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가 위원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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