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이혼” 악명의 800㎞…그 길, 홧병 고친 부부의 비결

2025-07-02

한국 사람이 유난히 많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프랑스 국경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생장 코스). 저마다 이유가 있지만, 안식을 찾아 떠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제학(62) 힐링산업협회장도 그랬다. “정신과를 찾아가야 하나 생각이 들던 때 산티아고 순례길로 향했고, 40일간 카렌시아(안식처)가 됐다.” 그는 종착지에 도착해 “프뉴마(성령 충만)를 경험했다”고 했다. 누군가를 한없이 미워했지만, 길을 걷고 나니 그가 측은해지고 자신의 처지 또한 측은해지더라는 것이다. 어느 선술집에 앉아 눈물을 한 바가지 쏟고 나니 미워했던 사람도, 그 자신도 용서가 됐다. 거짓말처럼 가슴 속 울화가 사라졌다.

영적 충만, 해탈, 자기 용서, 우울감으로부터의 해방. 이 회장의 경우처럼 길이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 득도의 장(場)이 되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그렇다고 한다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만병통치약이 될 것이다. 프랑스 생장에서 출발해 40일을 걷고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 섰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허탈해한다. 힘든 길을 완주했다는 성취감, 자기만족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생장 코스를 끝내고 곧바로 포르투갈로 넘어가 해안 길(270㎞)을 걷는 사람도 상당수다. ‘길은 이어진다’는 말은 그래서 생겼을 수 있다.

산티아고를 다녀온 1년 뒤, 최근 그는 에세이를 한 권 냈다. 『인생 별거 없어, 힐링하며 사는 거야』. 제목이 다소 가벼워 보이지만, 스토리는 그렇지 않다. 산티아고 여정과 힐링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간략했다. 서점에 가면 산티아고 관련 여행 책이 넘쳐난다. 대부분 길에 대한 정보와 개인의 감상을 빼곡히 적는다. 온라인에 있는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반면『인생 별거 없어, 힐링하며 사는 거야』는 길을 나서기까지의 고민과 걷기 과정, 걷고 나서 깨달음을 담담하게 적었다.

지난달 30일, 이 회장과 서울 양천구 신정산 둘레길 3㎞를 함께 걸었다. 그는 이 길을 계절을 가리지 않고 거의 매일 저녁 8~9시에 걷는다. 그때가 마음이 가장 평온하고 산책로 또한 그 시간이 호젓하다. 거의 아내와 함께 걷는다. 그는 1986년 서강대학교 총학생회장을 했고, 노동 현장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양천구청장과 소상공인연합회 상근 부회장을 했으며, 현재 힐링산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의 아내는 양천구청장을 지낸 김수영(61) 씨다. 산티아고도 아내와 둘이 걸었다. 여행사에 의탁하지 않고, 스스로 40일간의 여정을 짰다.

장거리 트레킹을 마치고 나서 남다른 경험을 했다는 게 신기하고 부럽다. 보통 오래 걸었던 길이 끝나면 시원섭섭하다고 하던데.

생장 코스가 끝나는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 섰을 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냥 큰 성당만 있었다. 그러고 나서 저녁에 성당 뒤 어느 선술집에 들어갔다. 현지인들이 퇴근 후 한잔하는 허름한 술집이었다. 거기서 와인 비슷한 술을 시켜 몇 잔을 들이켰다. 그랬더니 가슴 속에 있던 화병이 다시 치밀어 올라왔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런데 그 순간 원수로 생각했던 그 사람이 갑자기 측은해지더라. 내가 워낙 (그 사람에게) 저주를 퍼부어서 ‘양질 전환의 법칙(양적인 변화가 축적돼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이 일어난 건지 그 순간 그 사람에 대한 미움이 사라졌다. 또 스스로에 대한 측은함이 밀려와 한참을 울었다. 그날 이후로 울화병이 사라졌다. 걷는 동안에도 1주일에 한 번씩은 그런 화병이 도졌다. 그래서 걷는 것으론 치유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한국에 가서 ‘정신과에 가봐야겠다’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 그렇게 눈물을 쏟고 나니 괜찮아졌다. 재발하지 않았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괜찮다. 나에겐 그 길은 사람에 대한 지독한 미움을 털어버린 카렌시아였다. 

누구를 그렇게 미워했나

살다 보니 소송이 여러 건 됐다. 그게 피를 말리더라. 한번 송사에 휘말리면 대법원 판결이 나는 데 5년이 걸린다. 살면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산티아고를 간 덕분에 정신과 약을 먹지 않고도 잘 견뎠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여행사 단체팀에 들지 않고, 두 사람만 간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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