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 세계가 관세전쟁에 휩싸였다. 올해 4월 2일 미국이 공포한 소위 ‘해방의 날’, 200여 개국을 상대로 한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그것이다. 지구촌 82억 인구가 트럼프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때문에 생계 차질을 빚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어디 온당한 일인가. 인류 문명사에서 이런 일은 없었다. 역사상 최초의 제국인 로마제국도 사치세와 통행세를 거뒀을 뿐 속주까지 고관세를 부과하지 않았다. 로마경제권은 저관세 통합을 유지했다. 일방적 고율 관세는 제국의 횡포, 패권 위기에 나타나는 극단적 현상이다. 제조업을 외부에 넘긴 채 군사력, 금융, 첨단산업으로 버틴 미국의 패권전략에 한계가 왔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고율 관세가 미국의 전성시대를 되돌려줄까.
징벌적 고율관세는 제국의 횡포
80년 지속 세계평화의 흐름 막아
한국 선방에도 자유무역 종지부
저항동맹 보복관세는 전쟁 유발
고율 관세는 시장경제의 적(敵)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Angus Deaton)은 불평등 교역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이 인류의 기근과 빈곤을 몰아내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인정했다. 2차대전 이후 ‘80년의 세계평화’는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점진적 달성 덕분이었다. 선진국의 착취를 끊어야 한다는 세계체제론이 각광받기도 했지만, 정보망과 교통망이 거미줄처럼 처진 21세기 자본주의에서 자유무역은 인류공동체가 지켜야 할 목표다.
그런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흐름을 막고 틀었다. 미국의 무역적자폭과 우호의 정도, 전략적 유용성을 감안해서 10~50% 일방적 관세를 매겼고, 수천억 달러의 투자 유치를 못 박았다. 통행세치고는 인류역사상 최고다. 좌충우돌형 트럼프가 MAGA를 외칠 때 이런 반문명적 망상이 튀어나올 줄 예상치 못했다. 패권국의 징벌적 고관세는 문명시계를 뒤로 돌린다. 패권 유지관리비 징수에 환호하는 집단은 미국 자본가, 중산층 백인, 일부 노동자층이다.
관세 결정의 원칙은? 황제 자신도 잘 모른다. 개인적 호불호와 감정이 수시로 바뀐다. 받은 게 별로 없는 호주는 소고기 시장 개방 압력에 굴복해 트럼프의 칭찬을 받았다. 미국 폭격기에 초토화된 베트남은 20%, 국경을 맞댄 우방국 캐나다는 35% 관세 폭탄을 맞았다. 정권 성향이 수상한 최빈국 라오스와 미얀마에 40% 관세를 매겼다. 굶긴다는 얘기다. 내전국 시리아는 41%, 반미성향이 뚜렷한 세르비아와 이라크는 35%, 내정간섭 하지 말라고 대든 브라질 룰라 대통령에겐 50% 최고 관세가 떨어졌다. 스위스엔 39%, 불손한 통화에 트럼프가 뿔 났단다.
한국은 그래도 미국의 혜택을 듬뿍 받은 나라여서 그다지 억울하지는 않다.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는 정부 예산 70%에 달하는 미국 경제원조로 살았고, 60년대는 외국 상품 고관세 장벽이 허용돼 수입대체산업을 일궜다. ‘국산품 애용’은 눈물겨웠다. 70년대와 80년대, 미국이 베푼 개발도상국에 대한 저(低)관세 정책, 특히 ‘세금과 관세 일반협정’(GATT)에서 한국은 최혜국 대우를 받아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다. 1995년 WTO체제 출범 후 양국의 상호이익을 가져다준 한미FTA가 종착역인 줄 알았는데 트럼프가 약속을 깼다.
한국에 15% 관세와 3500억 달러 투자액을 안긴 트럼프가 일갈했다. “3500억 달러 투자금은 미국이 소유하고(owned) 조정하며(controlled), 대통령인 내가 (투자처를) 선택한다”고. 한국 대통령은 ‘2주일 내에 오라’고 일정까지 지정했다. 로마황제도 이렇게 일방적이지 않았고, 청(淸) 황제도 사절단을 오라 할 때 조공국 사정을 살폈다. 명분은 초청이지만 신임대통령 군기잡기다. 백악관에 불러놓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을 의제에 올린다면? 속사포같이 빠른 말에 속어를 뒤섞은 화법의 진의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어려울 터에, 불쑥 내민 협정문에 서명하기를 종용할지 모른다. 혹시 이재명 대통령이 버틴다면? 관세와 투자액 인상 카드를 내놓을 것이다. 트럼프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한국은 캐시 박스.’
미국의 일방적 관세 랠리에 글로벌 저항동맹이 생겨날 개연성이 크다. 가장 경제 규모가 큰 EU와 일본, 한국 간 보복관세 논의가 고개를 들지 모른다. 한국은 조선, 자동차, 반도체와 바이오에 사활을 걸었기에 저항동맹에 끼지는 않겠지만, 자존심이 상한 EU가 러시아나 중국 쪽으로 조금이라도 선회한다면 국제정세는 하루아침에 바뀐다. 전운이 피어오른다. 관세전쟁은 국가 간, 대륙 간 군사적 충돌의 전초전이다. 일찍이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가 그랬다.
내부 저항도 확산일로다. 고관세로 국가 곳간엔 돈이 쌓이는 반면, 인플레와 기업이익 감소로 서민생계는 곤궁해진다. 2만개 수입품에 40~59% 고관세를 매긴 1930년 스무스홀리 관세법이 어떤 참사를 초래했는지 미국민은 알고 있다. 참다못한 민주당이 나섰다. 트럼프가 일 년 소득에서 평균 2400달러를 빼앗아간다는 피켓을 들고 말이다. 복지로 보상한다는 트럼프의 말을 얼마나 믿을까. 10% 관세를 맞았던 남극 펭귄이 지구촌에 의아한 울음을 보내고 있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 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