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협상을 대부분 마무리 한 미국에서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에 따른 고용시장 약세가 동시에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미국 기업은 10%의 최저 관세만 부과됐던 지난 넉달간 재고 물량을 소진하며 가격 인상을 미뤄왔다. 그러나 오는 7일부터 고율의 관세가 적용되면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시장에서 나오는 각종 경고를 “통계 조작”이라고 주장하며 통계 담당자를 경질했다.
관세 근거 흔들리자…“통계가 조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현지시간) 노동통계국장을 돌연 경질했다. 노동부가 발표한 저조한 고용통계에 대해 “정치적 목적으로 조작했다”는 이유였다.

미 노동부는 전날 7월 비농업 일자리가 전월 대비 7만 3000명 증가하는데 그쳤다는 통계와 함께 지난 5~6월 고용 증가수를 25만 8000명 낮춘 수정 자료를 발표했다. 이는 관세로 미국의 제조업을 부흥시키겠다던 공약에 반하는 결과로, 경기가 급속히 위축되고 있음을 뜻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노동부의 수정 전 데이터를 제시하며 관세 정책에 따른 불확실성을 호소하는 시장의 반응과 달리 미국의 고용 시장이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부정적 고용지표가 공개된 당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에 “관세 덕분에 미국은 다시 위대하고 부유하게 됐다”는 글을 올렸다.
“관세 착시 현상 곧 사라질 것”
현지 소식통은 2일 중앙일보에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드라이브를 걸어온 배경은 긍정적인 경제지표 때문”이라며 “그러나 지금까지의 지표는 관세가 시장 지표에 반영되는 시차 때문에 발생한 ‘착시 현상’으로 조만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공개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예상치(2.6%)를 웃도는 3.0%를 기록했다. 그러자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트럼프 경제가 공식적으로 도래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2분기 GDP의 급격상 성장은 불확실한 관세 정책 때문에 재고 확보를 위해 급격하게 늘렸던 수입 물량이 30.3%나 급감하면서 나타난 착시에 가깝다. 실제 수입 급변동에 따라 미국의 민간 국내 투자는 15.6% 줄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나라가 됐다”며 자화자찬했던 외국인 투자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27%에 불과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락가락한 관세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얼마나 큰 혼란을 주고 있는지 보여주는 방증”이라며 “이 때문에 GDP이 개선됐음에도 경제 성장률이 1.2%에 그친 역사상 가장 기이한 보고서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재고 소진…“스마트폰·자동차 가격 주목”
정부 당국자는 이날 통화에서 “9월부터 가격 인상에 눈치를 봐왔던 자동차와 스마트폰의 신제품이 출시된다”며 “재고가 소진된 상태에서 정해질 자동차 및 스마트폰 가격과 스마트폰 가격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반도체 관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인의 필수품 가격이 급변동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EU)의 주요 자동차 메이커들이 확보한 재고 물량은 이미 바닥 상태”라며 “15%로 높아진 관세에 따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제로 인상폭을 놓고 서로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미국의 자동차 기업들도 생산 시설이 멕시코 등에 있어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특히 마진을 최소화해 유지해온 3만 달러 이하의 서민층의 자동차 시장이 관세에 따라 아예 사라져버릴 경우 미국 서민층의 불만이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승자는 트럼프, 패자는 미국 소비자”
예일대 예산연구실(TBL)은 이날 공개한 보고서에서 오는 7일부터 부과되는 상호관세를 포함할 경우 미국의 평균 유효관세율은 올해 초 2.5%에서 7개월만에 18.3%로 올라 1934년 이래 91년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TBL은 특히 “관세로 인해 미국의 물가 수준은 1.8% 상승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가구당 수입이 연간 2400달러(약 330만원) 줄어드는 효과와 같다”고 분석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사무부총장을 지낸 앨런 울프 피터슨국제경제학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은 AP에 “관세의 최대 승리자는 협박을 통해 상대국을 테이블에 앉히는 내기에서 승리한 트럼프”라며 “반면 가장 큰 패배자는 미국의 소비자들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관세에 따른 가격 인상에 대한 부담의 80%는 미국의 수입업자와 소비자들에게 전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 시장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수출업자가 관세 부담을 떠안게 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차이가 난다.
“격노하면 39%…부동산 거래하듯 협상”
즉흥적인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방식도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31일 스위스 정상과의 통화에서 스위스가 무역 불균형에 대한 해소 방안을 내놓지 않자 ‘격노’하며 31%로 통보했던 관세를 39%로 높였다.

외교 소식통은 “한국과 미국의 관세 협상 역시 솔직히 경제 논리가 아니라 전형적인 부동산 거래 방식의 ‘딜’의 방식으로 진행된 측면이 있다”며 “미국과 무역을 비롯해 외교·안보까지 감안해야 하는 동맹국의 입장에선 상식을 벗어난 협상 방식에 응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한국을 비롯해 일본과 유럽 등 경쟁국들이 일단 미국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의 카드를 제시했지만, 관세의 지속 가능성과 관련한 전략에 대해서 향후 물가와 고용 등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면밀히 지켜보며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