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석 달 간 고용 상황이 나빠졌다는 통계를 발표한 노동부의 노동통계국장을 경질하자 “통계를 정치화한다”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취임 6개월이 지나 경제 성과 시험대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통계를 내는 국가기관을 상대로 보복을 이어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노동통계국장에 임명된 윌리엄 비치는 2일(현지시간) 엑스에 에리카 맥엔타퍼 노동부 노동통계국장이 경질된 것과 관련해 “별다른 이유 없이 (그를) 해고하는 것은 다른 통계의 독립성까지 위협하는 위험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맥엔타퍼 국장과 함께 인구조사국에서 근무했던 경제학자 마이클 스트레인도 “기업, 가계, 투자자가 ‘정부 공식 통계는 정확하며 정치적으로 기울지 않는다’고 믿는 게 매우 중요한데 트럼프 대통령은 노동통계국의 공식 통계를 정치화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에 말했다.
노동부의 전 수석 경제학자 하이디 시어홀츠는 트럼프 대통령이 “독재적인 수법을 따왔다”며 정책 입안자와 시민이 데이터를 믿지 않게 되면 합리적인 경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의원들도 여야를 막론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맥엔타퍼 국장 해임을 비판했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민주당·매사추세츠)은 “사람들이 좋은 일자리를 갖도록 돕지는 못할망정 트럼프 대통령은 더 나빠진 일자리 수치를 발표한 통계 전문가를 해고했다”며 “왕 노릇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톰 틸리스 상원의원(공화당·노스캐롤라이나)도 “숫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해고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철 좀 들어야 한다”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동통계국이 전날 경제 ‘적신호’를 나타내는 통계를 발표하자마자 맥엔타퍼 국장 해임을 단행했다. 인구조사국, 재무부 등에서 경제학자로 지낸 맥엔타퍼 국장은 지난해 상원에서 86대 8의 초당적 표결로 인준됐다.
노동통계국은 지난 5~7월 고용 증가는 월평균 3만5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2만3000명)보다 8만8000명 줄어든 것으로 집계했다. 지난달 실업률은 4.2%로 전월(4.1%)보다 0.1%포인트 늘었고, 비농업 부문 일자리는 7만3000명 증가하는 데 그쳐 전문가 예상치(11만명)보다 낮았다.
노동통계국은 이전에 발표했던 5월(14만4000명)과 6월(14만7000명) 고용 증가 인원을 각각 12만5000명, 13만3000명씩 하향 조정했다. 초기 보고서에는 설문에 빠르게 답하는 대기업 위주의 지표가 담겨있고, 소규모 기업의 응답이 나중에 추가되면서 고용 증가 인원이 조정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보고서가 나오자 트럼프 대통령은 “(노동통계국은) 2024 대선 전 카멀라(해리스 당시 후보)의 승리 가능성을 높이려고 2024년 3월 고용 증가 폭을 81만8000명 과대 집계했다”며 통계 조작 음모론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고용 통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고용 상황이 관세 정책과 긴밀히 연결돼있기 때문이다. WP에 따르면 경제학자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1930년대 이후 최고 수준의 관세율을 부과하면서 경제 불확실성이 커졌고, 이 때문에 고용 시장이 얼어붙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2기 정권 기간 다른 분야에서도 미국의 경제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는 지표가 하나둘 나오고 있다. 상무부 경제분석국은 지난 2분기 소비 지출 증가율이 1.4%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7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8.0으로 5개월 연속 위축된 것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