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법원이 과세당국이 법인의 소득을 명확한 증거 없이 대표 개인에게 과세하면서 ‘실질과세 원칙’을 무리하게 적용한 것에 엄격한 제동을 걸었다.
법원은 “대표가 법인을 사실상 지배한다는 이유만으로 법인의 소득을 대표 개인의 소득으로 자의적으로 판단해 과세할 수 없다”고 명확히 판시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9부는 최근 서울 소재 법인과 그 대표 등이 지방국세청장과 관할 세무서장들을 상대로 낸 법인세 및 종합소득세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법인 소득을 대표 개인의 소득으로 간주한 세무당국의 처분 중 상당 부분이 위법하다”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2019구합56487, 2025. 2. 17.)
이번 소송은 국내외에서 카지노 사업을 운영하던 법인이 해외 카지노 사업권을 양도하면서 실제 소득 규모를 과소 신고하고, 허위 부채를 계상해 소득을 축소한 후 실소유자인 대표에게 은밀히 유출했다는 과세당국의 판단에서 비롯됐다.
세무당국은 “대표 개인이 법인을 사실상 지배했으므로, 카지노 사업권 매각에서 얻은 수백억 원 상당의 실제 소득 역시 대표 개인에게 귀속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법인세와 대표 개인에 대한 종합소득세를 부과했다.
하지만 법원은 세무당국의 이 같은 판단에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법인이 실제로 카지노 매각대금을 대표 개인에게 넘겨줬거나 대표가 실질적으로 소득을 지배 관리했다는 점에 대해 구체적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또한 “대표가 법인의 주요 거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회사의 주요 결정을 주도한 사실만으로 법인의 소득이 대표 개인의 소득으로 전환됐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실질과세 원칙은 과세당국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납세자의 경제적 실질에 따라 정확히 과세하기 위한 제도”라며 “실질과세를 적용하려면 소득의 귀속 여부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백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객관적 증거 없이 대표 개인과 법인을 하나로 묶어 소득을 자의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 행위”라고 밝혔다.
한편, 법원은 대표 개인이 해외에서 운영된 카지노 영업대행 사업(정켓)을 통해 수익을 은닉했다며 세무당국이 부과한 종합소득세 부분에 대해서도 과세처분을 취소했다.
법원은 “정켓 운영을 통해 얻은 수익이 실제로 대표 개인에게 귀속됐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는다”며 “과세당국이 개인의 소득 은닉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증거 제시가 필수적”이라고 명시했다.
다만 법인은 대표 개인의 차량 유지비나 콘도 이용료 등 개인적인 용도로 법인의 자금을 지출한 부분에 대해서는 세무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임원이 개인 용도로 법인의 자금을 사용하고 이를 손금 처리한 것은 명백히 법인의 소득을 불법적으로 감소시키려는 목적이므로, 세무당국이 이를 손금으로 인정하지 않은 처분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향후 과세당국이 실질과세 원칙을 적용할 때 반드시 명확한 증거와 구체적인 입증을 요구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참고 : 서울행정법원-2019-구합-56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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