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덕 시인의 '풍경'] 오독(誤讀)

2025-05-30

몰아대는 세월에 동서분주했지요. 주제넘은 세상 참견까지, 바빴지요. 모처럼 짬을 냈습니다. 도로가 주차장이 되는 주말을 피했습니다. 길이 여유로웠지요. 속이 뻥, 시원했습니다. 남양주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여유당(與猶堂), 마당은 넉넉하고 기단은 낮았습니다. 낮은 마루에 걸터앉아 오랜만에 고르게 숨 쉬었습니다. 행랑채 외양간이 눈에 들었지요. 구유 앞 한 마리 소, 넉넉한 고삐가 여유롭다 못해 한가로웠습니다. 배부르게 여물을 먹고 쓰으윽 물을 썼을, 가려운 등짝은 기다란 고삐 덕에 시원하게 기둥에 긁었을 것입니다.

초의선사(草衣禪師)와 차나 마시고, 그 많은 책만 지었을까요? 다산의 18년 강진(康津) 유배(流配)를 생각했습니다. 與猶堂(여유당), 당호를 우물거렸습니다. 살얼음판 같은 세월에 망설이기를(與) 겨울 냇물 건너듯, 내 편 없는 세상에 조심하기를(猶) 사방 이웃 두려워하듯, 어찌 숨인들 제대로 쉬었을까요. 장삼이사(張三李四) 필부(匹夫)처럼 간절히, 간절히 여유(餘裕)롭고 싶었을 다산의 심중인 듯 오독했습니다. 묘소에서 내려본 한강이 갇힌 듯 흐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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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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