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타리카. 스페인어로 풍요로운 해안이라는 뜻을 가진 중남미 자연의 보고. 국토의 절반가량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연중 열대기후를 유지해 생태 다양성이 높은 나라. 이렇게 멋진 수식이 붙은 곳을 누군가가 지상낙원이라고 한다면, 한 번쯤 가보고 싶지 않을까. 평소 여행 경험이 적지 않던 김지원의 코스타리카로의 출발이 그랬다. 스위스에서 만난 브라질 친구의 코스타리카에 대한 찬사는 중남미 문화권 출신의 추천이라는 점에서 더욱 신뢰할 만했다.
그러나 마침내 도착한 첫날, 그를 맞이한 것은 호객 행위를 빙자해 친절하게 접근한 사기꾼이었다. 김지원은 택시 운전사에게 속아 백 배가 넘는 기차푯값을 뜯긴 채 예정된 행선지 대신 경찰서를 찾아 나서야만 했다. 덕분에 작가의 ‘파라다이스 콤플렉스’ 연작은 그날 경찰서에서 작성한 피해 신고서와 자신의 손을 합성한 사진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김지원이 한 달 동안 머물며 촬영한 작업은 엄밀하게는 코스타리카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대신 저마다의 지상낙원을 좇는 실패한 여행자들에 대한 농담 같은 보고서다. 김지원의 시선은 아름다운 풍광 대신 멋진 정글 사진이 인쇄된 여행자의 배낭이나, 관광지의 조잡한 모형 야생 동물처럼 소소하면서도 묘하게 어긋나는 낯선 풍경에 맞춰져 있다. 진짜 같은 소품을 메고 이국적 자연을 찾아 나선 이들이 목격하는 가짜의 장면들. 그중 진짜로 목격하는 현실이란 관광산업으로 난개발이 한창인 모래밭 같은 풍경들이다.
화려한 수풀에 둘러싸인 그 틈에서 수영복 차림의 소녀들은 낙원을 즐기는 듯 해맑다. 진짜와 가짜를 넘나드는 김지원의 재치 넘치는 이미지들은 천국은 어디에도 없다는 뻔한 결론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정은 지속된다는 열린 결말을 기대하게 만든다. 각별한 무용담을 애써 심각하게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소중한 대상들을 스치듯 무심하게 포착함으로써 오히려 그 세계의 이면으로 빨려 들어간다.
송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