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5억→1조500억…'만화의 나라' 日 정복한 이 회사 비결

시작은 200엔이었다. 세계 최대 만화 시장이지만, 이미 100여 개의 회사들이 진입해있는 레드오션에서 유료 만화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다들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2016년 5월, 우리 돈 약 2000원의 첫 결제가 이뤄지던 날, 후발 주자였던 카카오픽코마의 김재용(48) 대표는 ‘기회’를 봤다고 했다. 회사의 실적은 꿈처럼 날아올랐다. 사업 첫해 1억5000만엔(약 15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지난해엔 1050억엔(약 1조 500억원)을 찍고 2년 연속 시장 1위에 올랐다. 그는 만화의 나라 일본을 어떻게 ‘정복’했을까. 지난달 25일 일본 도쿄에서 스스로를 ‘서비스쟁이’라 부르는 그를 만났다.

성공 비결을 묻자 주저 없이 “간절함”이라고 답했다. “사람마다 능력치가 있고 한계점이 있다고 하지 않나. 하지만 간절할 때는 그 이상을 발휘하는 것 같다. 어릴 때 일이다.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쫓아오더라. 너무 무서워서 단번에 어른 허리 높이 쓰레기통 위로 점프해서 뛰어 올라갔다. 내 능력치 이상으로 점프했던 것인데 (웃음) 간절했던 거다. 다시 성공 비결 이야기를 해보면, 간절했기 때문이다. 간절하다는 건, 결국 마음을 다한다는 것 아닌가.”

그가 픽코마에 합류한 것은 2015년 4월. 인터뷰 전날은 그의 취임 10주년 기념일이었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가 날아와 꽃다발과 라이언이 그려진 금반지, 10년의 기록이 담긴 사진첩 등의 선물을 안겼다. 카카오에서 ‘최장수 경영자’ 타이틀을 달게 된 그는 쑥스러워했다.

그는 질문이 많은 아이였다. “다행히 어머니가 그 많은 물음을 다 받아줬다. 돌아보면 엉뚱한 아이였다”고 했다. 대일외고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영문학과 경영학을 공부했는데, 방학마다 짐을 쌌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조금이라도 모으면 해외로 떠났다. 그렇게 간 나라가 무려 30개국이 넘는다.

첫 직장은 푸마.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안정환 선수의 신발을 일본서 공수하고 마케팅을 담당하면서 그는 일본 시장에 눈을 떴다. “일본서 회사를 차려야지” 생각했지만 창업은 쉽지 않았다.

인생을 바꾼 건 한 통의 일본 근무자 채용 광고 메일이었다. 무작정 지원서를 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 답장이 왔다. “죄송합니다.” 오기가 발동했다. 동료에게 물었다. “여기보다 더 큰 회사는 없어?”

운명이었을까. 동료는 NHN을 알려줬고, 그는 NHN재팬에 지원서를 보내 합류한다. 2006년 1월 1일의 일이었다. 전 재산 300만원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온 그는 일본의 국민 메신저가 된 ‘라인’ 서비스와 함께 초고속 승진을 했다. 그러던 2015년 1월, 그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다.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59)였다.

당시 카카오는 일찌감치 법인을 설립(2011년)한 상태였다. 하지만 원하던 서비스를 하진 못했다. 그는 “멋지게 ‘저는 새로운 도전을 좋아해요’라고 해야 했는데, 당시엔 변명만 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석 달 뒤 그는 짐을 쌌다. 당시 일본 직원은 16명. 1년 뒤인 2016년 4월 ‘유료’로 픽코마를 시작했다. 메차코믹, 라인망가와 같은 선발 주자만도 100여 곳이 넘을 때였다. “경쟁 서비스는 10년 먼저 시작한 상황이었다.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엔 아직 이뤄지지 않은 디지털화(서적 분야 20%)가 있었다. 그 누구도 승자이지 않은 느낌이었다.”

80여 개 작품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그는 차별화에 나섰다. 한국서 통한 “기다리면 공짜” 전략을 썼다. 24시간 기다리면 무료로 만화를 볼 수 있도록 했지만, 돈을 내더라도 다음 편을 보고 싶은 사람들은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벽도 있었다. 출판 업계의 관행이었다. 단행본을 통으로 출간하던 업계는 회차별로 나누는 데 반감이 있었다. 바꾸면 왜 안 되나. “예전부터 그렇게 했다”는 말이 싫었다. 설득에 나섰다. “일본에서 만화는 원래 잡지에서 연재했던 것이지 단행본이 아니었다”며 출판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운도 따랐다. 2019년 코로나 19가 터지면서 전자 만화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일본 전국출판협회에 따르면 2019년 전자 만화 시장은 2593억엔(약 2조5700억원)에서 2024년 5122억(약 5조900억원)대로 불어났다. 픽코마 매출 역시 같은 기간 134억4000만엔(약 1336억원)대에서 2023년 업계 1위(1000억엔·약 1조원)에 올랐고, 지난해에도 1050억엔(약 1조5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놀라운 상승세 덕에 픽코마는 일본 상장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서비스쟁이”라고 했다. “사실 회사를 M&A(기업 인수·합병)로 키워서 투자자들에게 투자받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구조를 짜는 일을 한다. 이 서비스가 잘 돌아갔을 때 그런 (투자) 것들이 따라온다고 믿는다”고 했다. “가끔 사람들이 어떤 아빠가 되고 싶냐고 하면 ‘친구 같은 아빠’라고 하지 않나. 나는 다르다. 친구 같은 아빠는 되고 싶지 않다. 이미 딸에겐 친구가 많다. 하지만 아버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다. 같은 의미에서 나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CEO는 되고 싶지 않다. CEO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리더가 되고 싶다. ”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목표도 내놨다. 히트 작품 외에도 서비스의 ‘허리’가 될 수 있는 작가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단순히 만화 한 권을 파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만화 산업의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서비스를 하겠다는 의미다. 그가 책장에서 만화책 한질을 가져왔다. 1982년부터 6년간 소년중앙에 연재됐던 이상무 작가의 『달려라 꼴찌』다. “어릴 때 본 만화인데, 챠리 킴이 나온다. (주인공 독고탁의 라이벌이다) 초등학교 단짝 이름은 기억을 못 해도 만화 주인공 이름은 다 기억한다. 좋아했던 만화가 최근 다시 책으로 나왔는데, 정말 기뻤다. 작품이란 건, 누군가 평생 행복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이지 않나.”

만화 '서비스 쟁이'의 일문일답

어려움은 없나

“서비스를 하다보면 사람들이 ‘태핑(tapping)’이란 말을 많이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말이다. 이 말엔 살짝 두드려보고 안되면 말지, 하는 마음이 들어있는 것 같다. 간절함이 적다.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사업은 간절하게 진심으로 해도 될까 말까지 않나. 잘 된 서비스에는 ‘한 번 살짝 해봤는데 대박났다’ 이런 것보다 어려운 시기와 고민이 있다고 본다. 우리 비즈니스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많이 모으고, 거기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수익화(monetize) 하느냐에 달렸다. 하지만 사실 사람 모으기도 힘들고, 모아 놓고도 실패를 한다. 개인적으로 창작물 하나하나의 가치가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다 보니 지금도 고민을 많이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한번은 천계영 작가의 『좋아하면 울리는』시즌 공개를 일주일 앞두고 영화관을 빌렸다. 한회만 영화관에서 미리 보여주는 것인데, 불과 2분도 안 걸리는 웹툰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렸다. 당시 스타워즈가 극장서 상영될 때였다. 스타워즈도 만석이 아니었는데, 미리 보기에 극장이 꽉찼다. 그때 한 여성이 갓난아이를 안고 와서 직접 안내를 해드렸다. 한참 지나 엽서가 한 장 도착했다. ‘임신했을 때 어려운 일이 있어 우울하고 힘들었는데 만화로 행복했고 즐거웠다. 그 덕에 아이가 태어나 함께 극장에 왔다’는 것이었다. 작은 것들이지만 하나하나 이런 것들이 참 소중하다. ”

어떻게 하루를 보내나.

“매일 새벽 3시경에 눈을 뜬다. (웃음) 연례 행사도 있다. ‘부정’이다. 매년 12월달이 되면 무조건 1월부터 내가 한 모든 것을 다 부정해본다. 성공한 것도 실패한 것도 모두 뒤집어서 부정해본다. 내 판단이 정말 맞았는지 곱씹는 거다. 그러면서 의사 결정 과정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깨닫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