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의 행복
#1. 1947년 초봄, 전남 강진의 어느 주택가

문정숙: (시어머니를 쏘아보며) 병신 아들 낳아놓고 무슨 유세요!
17세 문정숙의 앳된 얼굴에 독기 어린 눈빛이 서려 있다.
시어머니: (핏대를 올리며) 요년아! 내 죽을 때까지 입 꾹 다물기로 약속했는디,
느이 양엄마가 글쎄 돈 5만원이랑 쌀 한 가마니에 너 가져가라 하더라!
말 끝나기 무섭게 시어머니가 정숙의 머리채를 잡으려 손을 위로 든다.
정숙은 시어머니 손목을 확 낚아챈다.

문정숙: (분노로 몸을 떨며) 내가 머리채 잡힐 일 뭐 했는디요!
간질병에 6살 딸내미까지 있는 서방한테 속아서 시집온 게 머리채 잡힐 일이냐고!

정숙이 말을 끝내자마자 혼인신고서를 박박 찢어 아궁이 불에 냅다 던진다. 시댁 식구들은 넋 나간 표정으로 아무 말 못 하고 쳐다본다. 시댁 식구들을 뒤로한 채 정숙은 대문을 쾅 박차고 나간다.

#2. 눈 쌓인 시골길, 밤
어둡고 추운 밤, 눈 덮인 길을 맨발로 아득바득 걸어나가는 정숙.
떨어진 눈물 자국이 또렷하게 발자국 위로 새겨진다.
#3. 시내 산부인과, 밤

차갑고 을씨년스러운 수술대 위에 누운 정숙.
두 눈을 천장에 고정한 채, 공허하지만 단호한 눈빛으로 중얼거린다.
문정숙: (독백) 영영 아기를 낳지 않을 거야….
살림 밑천으로 쓰일 여자로 팔려 갈 바엔 차라리 한 인간으로 떳떳하게 살 거야.
내 손으로 내 인생 일구고 말 테야.
여느 드라마 속 한 장면이 아니다.〈100세의 행복〉 10화 주인공, 문정숙(95·이하 경칭 생략)씨 이야기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숨죽이고 살아야 했던 시대, 시부모 밥상을 엎어버렸던 소녀.
가진 것 하나 없던 이 소녀는 100세에 가까운 지금 극진한 ‘VIP’ 대접을 받고 산다.
해외에 억 단위 돈을 기부하는 후원계 거물로 불린다.
모진 세월은 그에게 병이 아닌 면역을 새겨줬다. 가장 가난하고 가장 외로웠던 천애 고아 문정숙은 지금 누구보다 건강하고 풍요롭다.

그를 단단하게 빚어낸 건, 사랑받지 못한 어린 날의 허기였다.
목차
📌 이루지 못한 첫사랑, 그후 180도 바뀐 삶
📌 돈 없어도 이것만은 꼭… 60년 전 ‘가치 투자’
📌 자식 피해 멀리 이사, 일부러 ‘전세’ 택한 이유
📌 VIP 대접받는 진짜 부자 되다…그 비법은
※〈100세의 행복〉지난 이야기 복습하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①“100세지만 연애 중입니다” 매일 뽀뽀하는 노부부의 비밀
②매일 새벽 목욕탕 간다…‘수퍼 무릎’ 100세 참전용사 루틴
③95세에 가요무대 오디션 본다…‘얼죽아’ 할머니의 마법 가루
이루지 못한 첫사랑, 그 후 180도 바뀐 삶
문정숙은 태어나서 “엄마” 소리 한 번 못 해봤다. 아버지는 일본군 쇠고랑에 차여 징용에 끌려갔다. “세 밤만 자고 있어. 금방 올게” 했던 아버지는 아무리 목 놓아 울어도 오지 않았다.
세 살 되던 해, 1933년 그의 곁엔 아무도 없었다.
고아원은 지옥이었다. 밥 대신 우유를 대야에 풀어서 줬다. 오랫동안 썩어서 굳어버린 우유를….
어른들은 딱딱하게 굳은 우유를 망치로 깨부숴서 한 주먹씩 나눠 줬다. 이걸 먹은 애들 다섯이 눈앞에서 죽었다. 어린 정숙은 배를 곯아 5일 내내 벽에 붙은 흙을 뜯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