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년간 국가가 만든 죄인으로 살아온 삶, 이제 꿈이 있다면 후손들은 성폭력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달라고 두 손 모아 빌고 싶습니다.”
23일 오전, 법정을 나선 최말자씨(78)는 후련한 듯 환한 표정이었다. 그는 법정 앞에 모인 여성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에게 “제가 이겼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1964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에게 저항하다 혀를 깨물어 중상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은 최씨의 재심 첫 공판에서 검찰이 무죄를 구형하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검찰이 무죄를 구형함에 따라 최씨는 오는 9월로 예정된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을 것이 확실시된다. 18세의 나이로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되레 가해자로 몰려 옥살이까지 해야 했던 최씨가 61년만에 정당방위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날 부산지법 형사5부(김현순 부장판사)가 진행한 재심 첫 공판이자 결심공판에서 정명원 부산지검 공판부 부장검사는 “생면부지 남성으로부터 인적없는 집에서 갑자기 범죄를 당했고, 이에 대한 방어 행위로서 부지불식간에 혀를 깨물게 됐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정 부장검사는 “이는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한 행위로써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피고인에 대한 정당방위를 인정해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말했다.
검찰은 과거 기소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부장검사는 “검찰의 역할은 범죄 피해자를 범죄사실 그 자체로부터는 물론이고 사회적 편견과 2차 가해로부터도 보호하는 것”이라며 “과거 이 사건에서 검찰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반대로 갔다.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도움을 받아야 했을 최말자님에게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최씨 측 변호인은 “이 사건은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무죄가 되는 사건이 아니라 그때나 지금이나 무죄일 수밖에 없는 사건이 검찰과 법원의 잘못으로 오판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18세였던 1964년 5월6일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노모씨(당시 21세)에게 저항하다가 노씨의 혀를 깨물어 1.5㎝가량 절단되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6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재판에서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에도 최씨는 정당방위를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씨는 2020년 재심을 청구했으나 이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최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며 청구를 잇따라 기각했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사건을 파기환송하면서 재심 청구 5년이 지난 뒤에야 재심 개시가 결정됐다. 재심 재판부의 선고공판은 9월10일 열린다. 최씨는 이날 재판이 끝난 뒤 “검찰이 사과하는 것을 분명히 들었지만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들으니 정의는 살아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