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쿠팡에게 먼저 사과부터 해야겠다. 괜히 그런 칼럼을 썼다(관련 기사 [데스크칼럼] 쿠팡 3370만 개인정보 노출 사고 “별일 아니다”). “별일 아니다”라고 썼고, “결국 조용히 지나갈 것”이라고 썼다. 그 글은 결과적으로 쿠팡을 안심시켰을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면 관리 가능한 사고이고, 조금만 버티면 된다는 판단을 강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 글이 쿠팡 내부 어디쯤에서 공유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혹시라도 결정권을 가진 누군가 조금이라도 이렇게 생각했다면 칼럼의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물론 고작 칼럼 하나가 쿠팡 같은 대기업의 위기 대응 전략을 좌우하진 않는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소비되는 방식을 너무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착각했다. 사고는 크고, 대응은 무난하고, 여론은 빨리 식는다. 늘 그래왔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개인정보 유출 자체는 여전히 별일 아니다. 3370만 건이라는 숫자가 크긴 하지만, 숫자가 크다고 항상 일이 커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사고가 아니라 수습에 달렸다. 벌써 대중, 그리고 소비자의 머릿속에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희미해졌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건 자칭 글로벌 기업 CEO 김범석의 ‘오만’이다.
통상적인 위기관리 매뉴얼대로라면 김 의장은 국회에 출석해 납작 엎드려 사과했어야 한다. 진심 여부와 상관없이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 그것이 소비자에게 용서할 명분을 주는 대기업의 ‘전형적인 장면’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판결을 내리는 법원이 아니다. 책임지는 얼굴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국민의 눈높이가 머무는 곳이다. 쿠팡보다 거대한 대기업 오너들이 굳이 고개를 숙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미국 국적의 김범석 의장은 한국 사회를 너무 만만하게 봤다. 여기서부터 이 사안의 성격은 백팔십도 달라진다. 이제 한국 소비자에게 남은 감정은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불안감’이 아니라 쿠팡이라는 기업에 대한 ‘불쾌함’이다. 정확히는 쿠팡이 한국이라는 국가의 정치 권력과 제도를, 더 나아가 한국 소비자를 얼마나 만만하게 봤는가에 대한 불쾌함이다.
김 의장은 글로벌 업무를 핑계로 국회 출석을 거부했다. 그러나 쿠팡 매출의 90%는 한국에서 나온다. 물류센터와 노동자, 그리고 피해를 입은 소비자 모두 한국에 있다. 한국 시장 없이는 존립 자체가 불가능한 기업이 책임을 묻는 자리에서만 갑자기 ‘글로벌 기업’의 가면을 쓴다. 돈을 벌 때는 한국 기업이고, 책임질 때는 글로벌 기업이라는 이른바 ‘선택적 글로벌리즘’은 한국인에게 기만으로 비칠 뿐이다. 심지어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 경영인을 대역으로 내세운 것은 최악의 수였다.
국회는 이러한 계산된 회피를 가장 모욕적으로 받아들이는 공간이다. 현재 벌어지는 파상공세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분노라기보다, 일개 기업에 무시당했다는 감정에 대한 반작용에 가깝다. 입국 금지까지 거론되는 과도한 대응 역시 이러한 정서적 응징의 연장선에 있다.
도대체 김범석 의장의 이러한 자신감은 어디에서 올까. 그것은 한국 시장에서 쿠팡의 독점적 지위다. 소비자들은 쿠팡을 쓰면서도 마음 한편이 편치 않다. 새벽 배송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갖춘 대체재가 없기에, 불만이 있어도 결국 다시 쿠팡 앱을 열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확신이 김 의장으로 하여금 “나오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소비자는 떠나지 않는다”는 오판을 하게 만들었다.
독점은 늘 같은 결말을 맞는다. 시장의 견제가 작동하지 못하면, 결국 정치가 칼을 빼든다. 지금 국회에서 여야 정치인들이 한목소리를 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쿠팡이라는 플랫폼이 너무 커졌고, 동시에 대체 불가능해졌다는 ‘플랫폼 공포’가 공유되고 있다. “이제는 손을 봐야 한다”는 정치적 공감대가 형성된 이상, 쿠팡은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대가를 치를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쿠팡과 김범석 의장은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예의를 무시했다. 시장에서 불가침 영역이라 믿었던 기업이 정치와 대중의 심판에 의해 단죄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이는 쿠팡뿐 아니라 모든 독점적 플랫폼에게 던지는 강력한 경고다. 한국에서 돈을 벌면서 한국을 우습게 본 대가는, 언제나 생각보다 크다.
봉성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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