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객이 ‘우와’ 하게 만들자(WOW the Customer).” 쿠팡의 15개 사업 원칙 중 하나다. 사람들이 쿠팡의 서비스에 감동해서 감탄사가 나오도록 만들자는 뜻이라고 한다. 솔직히 그동안 쿠팡을 쓰면서 감동에 겨워 “우와” 한 적은 별로 없었는데, 얼마 전부터 쿠팡의 행태에 기가 차서 “우와” 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고객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말을 처음 듣고 나도 모르게 “우와” 하고 말았다. 우리나라 인구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이메일, 전화번호, 주소, 공동현관 비밀번호, 주문 이력 등 민감한 정보를 통째로 도둑맞았다. 내 주소뿐만 아니라 선물을 보내느라 주소록에 올려둔 지인들의 주소까지 남김없이 탈탈 털렸다.
3370만명의 개인정보 유출에도
근본적 해결보다는 회피에 급급
돈만 벌고 책임지지 않겠단 태도
고객들의 거센 분노에 직면할 듯

그 뒤 이 사태에 대처하는 쿠팡의 모습을 볼 때마다 “우와”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쿠팡은 애초 그다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들리는 단어인 ‘노출’을 썼다가 여론이 살벌해진 뒤에야 ‘유출’로 고쳐 썼다. 그리곤 한국 대표가 사임했고 그 자리는 미국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 출신의 본사 임원이 대신했다. 한국어 소통이 쉽지 않아 국회 청문회 시간 대부분을 통역으로 때우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청문회는 기나긴 통역이 상당 시간을 채웠다. 그러는 와중에도 미국에 있는 최고책임자는 이 사태에 대해 사과는커녕, 아예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의 청문회 출석 요구에는 글로벌 비즈니스 때문에 바빠서 못 나간다고 했단다. “우와”가 이어진다.
2010년 상품할인권, 즉 쿠폰을 거래하는 소셜커머스로 출발한 쿠팡은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전환하더니 빠른 배송을 앞세워 한국 온라인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2018년 소프트뱅크의 20억 달러를 비롯한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이를 물류 인프라에 투자해 몸집을 키웠다. 매출과 사용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한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성장, 2021년에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까지 했다.
그러나 쿠팡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세상에 없던 배송 서비스”의 어두운 곳에서 많은 노동자들의 목숨이 스러졌다. 2020년 10월 쿠팡 물류센터에서 야간 근무를 하던 노동자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이후 과중한 작업량과 장시간 노동으로 쿠팡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뉴스가 계속됐다. 물류센터 밖에서도 노동 환경은 열악했다. 하루 수백 건의 배송을 소화하던 택배 노동자들이 뇌출혈과 심정지로 숨졌다. 2020년부터 올해 11월까지 사망한 물류센터 노동자와 택배기사는 알려진 것만 27명, 올해 사망한 8명 가운데 6명이 야간 노동자였다. ‘새벽배송’은 새벽까지 이어지는 중노동이었고 ‘로켓배송’은 노동자의 피와 땀을 연료로 삼았다.
계속되는 문제에 대한 쿠팡의 자세는 한결같았다.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덮고 회피하는 데 돈과 시간을 투입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다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도 관성적으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쿠팡은 크고 작은 사고가 터질 때마다 대관 업무에 투입될 국회와 정부 기관 출신 공무원을 대거 영입했다. 최근 6년간 영입한 퇴직 공무원이 62명, 올해에만 28명이라고 한다. 이들 공무원 출신 대관 요원들은 대표의 청문회 출석을 막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뛴다고 한다. 돈은 벌고 싶지만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개돼 있는 지난해 쿠팡 결산보고서에는 이 회사의 대표이사(CEO) 겸 이사회 의장(President)이 범 킴(Bom Kim)임을 밝히고 있다.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 그렇게 강조했던 김범석이란 이름은 이 회사의 공식 문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보고서에는 쿠팡의 가장 중요한 시장(Primary market)이 한국이라고 적혀있다. 실제로 쿠팡 매출의 90%는 한국에서 발생한다.
1773년 12월 16일 추운 겨울날, 식민지 시절 미국의 보스턴 항구에서 시민들은 영국 정부의 부당한 세금 부과에 항거해 항구에 정박해 있던 배를 습격해 차를 바다에 던져 버렸다. 미국 독립의 전조를 알렸던 보스턴 티파티(Tea party) 운동이다. 책임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익만 취하는 영국 정부의 행태에 분노한 티파티는 3년 뒤 미국 독립선언의 도화선으로 타올랐다. 252년 뒤 쿠팡은 대한민국에서 매출의 대부분을 달성하면서도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이에 앞선 수많은 문제에 대해 회피와 미봉으로 일관하고 있다. 범 킴 의장은 이제 한국판 티파티 운동을 직면할 것 같다.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