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협상 타결…신고식 마친 이재명 정부
큰 합의 끝났지만 구체적 내용 조율은 숙제
경제부총리 "악마도 천사도 디테일에 있다"
[세종=뉴스핌] 양가희 기자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추가 조율이 남았다. 한미 무역협상이 상호관세 발효일을 목전에 두고 15%로 극적 타결됐다. 그간 4000억달러 투자, 쌀·소고기 개방 등 많은 것을 내줘야 하는지에 대한 우려가 컸으나 한국이 제시한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가 양국 정부 입장 차를 크게 좁혔다. 한국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차용,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마스가)라는 구호가 적힌 빨간색 모자까지 만들었다.

타결 소식이 전해진 직후 '이 정도면'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 타결은 큰 틀의 합의일 뿐이다.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되지 않았다. 한숨 돌린 것뿐 아직 숙제가 많이 남은 상황이다.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가장 먼저 투자 분야의 3500억달러 규모 펀드가 눈에 띈다. 1500억달러는 조선업 협력(마스가) 펀드, 나머지 2000억달러는 핵심광물·반도체·2차전지 등 주요전략산업 대미 금융 패키지다. 조선업 협력은 한국의 주도권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모양새지만, 재원 마련 및 수익 분배 구조 수립 등 세부 내용에 대한 우려가 크다.
시장 개방 영역도 과제가 남았다. 민감 품목인 쌀과 소고기는 지켰지만, 미국산 신선과일 등 농축산물 검역절차 완화 압박은 거세질 것으로 전망됐다. 검역 완화 가능성에 대해 대통령실도 "상세 항목은 조율과 협상 여지가 남아 있는 부분"이라고 답했다. 특히 농산물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한국 농산물 시장 개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미국 백악관에서 '한국의 쌀 시장 개방'을 언급하면서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게시글을 정치적 수사로 해석하고 선을 그었다.
만약 투자 수익 배분구조가 한국에 불리하게 설정된다면, 만약 미국산 체리에 대한 검역 규정이 대폭 완화된다면 어떻게 될까. 디테일이 망가진다면 절반의 성공조차 될 수 없다. 또 그간 협상 과정에서 부각된 온라인플랫폼법 제정, 구글 정밀지도 반출 허용 등 각종 이슈도 남았다. 이 같은 이슈는 이번 합의에 포함되지 않아 잠잠해졌을 뿐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조만간 열릴 한미 정상회담이나 추가 조율을 위한 실무협의에서 미국의 돌발행동이나 추가 요구도 변수로 남아 있다.
정부도 남은 과제에 대한 우려를 인지하고 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협상 타결 직후 워싱턴D.C.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가 문제인데, 사람들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얘기하지 않냐"며 "협상안을 가지고 구체적 전략을 수립하고 미국과 세부 협상 과정에 있어서 능동적으로 대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지난 1일에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는데 저는 천사도 디테일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미가 윈-윈할 수 있는 경제협력으로까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향후 방향에 대해 언급했다.
이번 협상은 정부 출범 이후 첫 시험대이자 신고식이었다. 그간 침묵을 유지하던 이재명 대통령은 협상 타결 소식이 들린 후에서야 고위공직자 워크숍에서 "(부담감에) 이빨이 흔들렸다"고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다. 일단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나쁘지 않은 큰 틀에서의 합의가 끝났고, 최악의 상황을 면한 것으로 한 발짝을 뗐다. 다음 발자국도 무사히 내딛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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