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된장 물회와 고흥 유자 세비체

2025-07-21

[전남인터넷신문]물회는 여름철에 특히 사랑받는 음식 중 하나로, 그중에서도 전라남도 장흥 지역의 된장물회는 독특한 풍미와 지역성을 지닌 향토 음식으로 주목받는다. 장흥 회진면 일대에서 주로 즐겨 먹는 이 음식은 구수한 된장 육수에 신선한 생선회와 다양한 채소를 넣고 차게 즐기는 방식으로, 더위에 지친 입맛을 살리기에 제격이다.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 맛이 특징이며, 남은 국물에 국수나 밥을 말아 먹는 식문화도 자리 잡고 있다.

장흥 된장물회는 멀리 남미의 해산물 요리인 세비체(cebiche)와도 유사한 점이 많다. 세비체는 페루를 비롯한 태평양 연안 국가에서 널리 먹는 음식으로, 흰살생선이나 새우, 가리비 등의 해산물을 얇게 썰어 레몬즙이나 라임즙에 절인 뒤, 고수, 양파, 고추, 마늘 등과 함께 차게 먹는다.

오늘날의 세비체는 페루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한 형태이며, 그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 고대 페루 해안에서 패션프루트 발효액에 생선을 절여 먹은 사례, 잉카 시대 자색옥수수 발효음료인 치차에 날생선을 무친 전통, 스페인 식민지 시대 무어인 여성들이 전래한 요리법, 그리고 흑인 노예들이 바닷가에서 잡은 생선을 즉석에서 고수와 채소, 레몬 등을 넣고 비벼 먹은 방식이 그 예다.

흑인 노예들의 세비체 조리 방식은 장흥 회진 지역의 식문화와 흡사하다. 바닷일이나 들일을 하던 사람들이 물고기를 즉석에서 회로 떠, 열무김치 국물, 된장, 마늘, 풋고추 등과 섞어 비벼 먹던 전통은 오늘날 된장물회의 기원이 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유사한 조리 방식이 등장한 것은, 날것의 해산물을 산성 재료와 채소로 보완하여 안전하고 맛있게 즐기려는 인간의 공통된 지혜로도 볼 수 있다.

세비체와 장흥 된장물회는 조리 재료와 방식에서 여러 공통점을 갖는다. 두 음식 모두 마늘, 고추, 양파 등의 채소를 기본으로 사용하며, 살균 효과를 위해 산성 재료를 활용한다. 단지 세비체는 레몬이나 라임을, 된장물회는 식초나 매실청을 사용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러한 유사성은 장흥 된장물회의 확장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세비체의 레몬·라임을 대체할 수 있는 국내 재료로 ‘유자’가 있다는 점이다. 전남 고흥 등지에서 생산되는 유자즙이나 유자 드레싱은 상큼한 맛과 살균 효과를 모두 갖추고 있어 물회에 응용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실제로 현재 장흥 된장물회에는 매실청이 널리 사용되고 있으므로, 유자 또한 무리 없이 조리법에 통합될 수 있다. 유자 특유의 향긋함과 산뜻함은 물회의 감칠맛을 더해주며, 회비빔밥이나 해산물 샐러드와도 궁합이 뛰어나다.

장흥 된장물회에 유자를 접목하면 음식의 상품성을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유자 소비도 촉진할 수 있다. 유자즙이나 유자 드레싱을 물회용 패키지로 개발한다면, 새로운 형태의 물회 제품을 출시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는 장흥 된장물회의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전남산 유자의 활용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해안을 기고 있는 고흥 유자 세비체의 탄생도 가능하며, 남도 음식의 독창성과 매력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지역의 자원을 활용한 음식문화의 재해석은 음식의 품격을 높이는 동시에 지역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장흥 된장물회에 전남 고유의 유자를 접목시키는 일은 단순한 조리법의 변화가 아니라, 향토음식의 진화를 통해 지역과 사람을 잇는 새로운 문화 자산을 창조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남도의 여름을 담은 된장물회 한 그릇이, 계절의 맛을 넘어서 지역의 가치를 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1. 페루 세비체와 장흥 열무김치 된장물회. 전남인터넷신문 농업칼럼(2021.12.20)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