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딸 국제무대 등판시킨 김정은, 그 뒤엔 '어두운 과거'

2025-09-03

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에 동행하면서 딸 주애도 국제무대에 등판했다. 주애는 2013년생으로, 12살에 외교 활동을 개시한 건 김씨 일가를 지칭하는 백두혈통 중 최연소다.

다만 김정은은 예상과 달리 3일 오전 전승절(戰勝節·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대회) 열병식 참관을 위한 천안문 망루에는 주애를 대동하지 않았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미국의 패권에 맞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주도하겠다고 선언하는 자리에 주애를 등장시키는 건 중국이 불쾌해하거나 김정은으로서도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주애가 26개국 정상이 참석하는 다자외교 무대까지 감당하기에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번 방중을 통해 주애가 북한의 4대 세습 후계자로 낙점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나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 역시 후계자의 중국 방문 동행을 후계 구도 구체화의 기회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북한 내 봉건적 남존여비 인식 등 때문에 주애가 궁극적으로 후계자가 되기는 힘들다는 일각의 관측도 이번 방중을 통해 상당 부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주애를 '미래 지도자'로 자리매김하려는 신호로, 북한 내부 권력 승계 과정의 일부로 보인다"며 "주애를 국제 무대에 노출해 외교적 감각을 키우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아직 41세로 젊은 김정은이 12살에 불과한 딸을 조기에 외교 무대에 내세운 건 북한 체제의 특수성을 고려해도 이례적이다. 자칫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최고 존엄'으로 불리는 김정은의 신변 이상은 북한 정권의 존립이나 내부 정치, 인접 국가와의 관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북한 당국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슈다.

또 '부자 간에도 권력을 나눌 수 없다'는 명제는 북한에도 적용될 수 있다. 김일성은 1974년 김정일을 후계자로 내정했지만, 1980년 6월 당 대회에서야 후계자 지위를 공식화했다. 김정일도 2008년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한 뒤 2010년 9월 노동당 제3차 당 대표자회를 통해 이를 공표했다.

각각 38세와 26세 추정되는 김정일·김정은의 후계 낙점 시기와 비교하면, 10대 초반에 불과한 주애의 공식 등장은 과도하게 빠르다. 북한 매체들이 아직 주애를 '사랑하는 자제분'으로만 표현하고 있는 걸 고려하면, 대외적 공식화가 먼저 이뤄진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김정은의 이런 무리수 배경에는 개인적인 성장 배경이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정은의 생모는 북송 재일교포 무용수 출신인 고용희로, 김정일의 정실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재일교포 출신에 셋째 부인이라는 이유로 김정은은 아버지와 떨어져 '은둔의 유년기'를 보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이 '백두혈통'임에도 정통성에 끊임없는 의구심을 받아온 자신의 유년시절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자녀에게 정치적 정통성을 부여하고 일찍부터 외교적인 감각을 키워주려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정은은 2010년 김정일 방중 시 후계자 자격으로 동행해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으나 시진핑을 만난 건 집권 뒤 약 7년 지난 2018년이었다. 북·중 관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해온 고모부 장성택 숙청, 핵실험을 비롯한 고강도 도발 등으로 눈 밖에 나면서 중국의 '축복' 자체를 받지 못하고 상당 기간 외교적인 고립을 겪은 것도 주애의 동행 결정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김정은이 다자외교 무대 데뷔 과정에서 주애를 소도구로 활용한 것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어린 자녀를 챙기는 모습을 통해 잔혹한 독재자 이미지를 희석하고, 보다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려 했다는 것이다. 선례를 보면 북한 내부적으로 후계자 내정 절차가 많이 남아 있고, 김정은에게는 주애 외에도 자녀 2명이 더 있다는 정보당국 판단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싣는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김정은이 대내외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자신의 자녀까지도 상품으로 포장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김정은을 빛내기 위한 노동당 선전선동부의 프로파간다 전략이 이번에도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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