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처방전] “아 그게 뭐였지?”…기억력 걱정될 땐 ‘인지 예비능력’부터 키우세요

2025-05-07

“요즘 기억력이 자꾸 떨어져요. 뭘 어디에 뒀는지 기억을 못하고 맨날 찾아요. 차를 어디에 주차했는지 기억을 못해서 한참을 찾아다닐 때도 있어요. 치매가 오는 걸까요?”

진료실에서 50대 이상의 환자들이 흔히 호소하는 것 중 하나는 기억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치매에 걸린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력이 떨어졌다고 그것이 곧 치매에 걸렸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억력이 저하됐을 때 고려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기억력 저하는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일 수 있다. 또 요즘처럼 스트레스가 많은 시대에는 걱정이나 고민이 많아도 기억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의미 있는 것을 기억하고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정신적 활동을 하려면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마음에 정신적 에너지를 담고 있는 배터리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쓸데없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잔뜩 띄워놓으면 스마트폰 배터리가 빨리 방전된다. 이와 같이 마음속 걱정거리가 많고 해결해야 할 고민과 스트레스가 많다면 정신 에너지가 빨리 소모된다. 그러다보면 정작 중요한 일에 집중을 못하고 기억력이 흐려지게 된다. 심한 경우에는 불안이나 우울 상태는 아닌지 고려해봐야 한다.

치매는 노화 과정에서 뇌의 신경세포들이 점점 줄어들고 기능이 떨어지면서 발생한다.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잃고 일상생활 기술도 점차 잃어가며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치매 예방을 위한 시사점을 찾아볼 수 있는 주목할 만한 연구가 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천주교 수녀 678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수녀원 연구’다. 이 연구에 참가한 수녀들은 살아생전의 생활 기록을 공유하고, 인지능력 검사를 받았다. 수녀들이 사망한 후에는 뇌의 조직병리 검사가 시행됐다.

연구는 사후에 이뤄진 조직병리 검사에서 뇌가 치매의 전형적인 소견을 보여줬음에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치매의 징후를 보이지 않고 건강하게 생활했던 수녀들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수녀들의 공통점은 언어능력이 뛰어났으며, 평생 배움에 힘을 쏟는 등 뇌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또 행복·만족·감사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자주 표현했다.

수녀원 연구는 ‘인지 예비능력’이라는 개념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했다. 인지 예비능력이란 손상이나 퇴행성 변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손상을 보완하거나 우회해 인지 기능을 비교적 정상 수준으로 유지하게 해주는 뇌의 능력을 말한다. 뇌의 다양한 기능과 활동은 신경세포들의 연결에 의해서 이뤄진다. 이를 도로망에 비유해볼 수 있다. 다양한 도로망이 구축된 도시는 어느 한 길이 사고로 인해 폐쇄되더라도 다른 길로 우회해서 교통의 흐름을 유지하며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수녀원 연구와 인지 예비능력이 시사하는 바를 토대로 치매 예방을 위해 생각해볼 수 있는 점은 다음과 같다. 익숙하지 않은 경험과 도전은 신경망의 형성을 촉진해 손상된 뇌의 활동을 보충할 수 있다. 이것은 신경세포를 연결시켜 뇌에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이다. 뇌세포의 연결을 자극해 인지 예비능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정신적·신체적·사회적 활동이 있다. 독서, 글쓰기, 외국어 배우기, 악기 연주 등 정신적 활동과 걷기, 수영과 같은 신체적 활동 그리고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봉사 활동을 하는 등의 사회적 활동이다.

치매는 단일한 한가지 이유로 발생하지 않는다. 치매의 위험 요소로는 나이, 유전적 요인, 심혈관 질환, 흡연, 머리 외상, 음주, 우울증, 사회적 고립, 신체활동 부족, 불충분한 수면 등이 있다. 치매 예방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인지능력 저하를 가속할 수 있는 요인들을 줄이고 예방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치매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기보다는 매일 건강한 일상을 살아가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김현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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