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교수는 왜 30억개 바이러스를 자기 몸에 주사했나

2025-11-10

‘자기 실험’ 무죄 판결 받은 황태호 교수

브레이크가 고장 난 화차(트롤리)가 달리고 있다. 이대로면 선로 위에서 일하는 광부 5명이 죽는다. 선로를 바꾸면 바뀐 선로 위 한 명이 죽는다. 당신은 앞에 있는 선로전환기를 당길 것인가. 무엇이 윤리적 선택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트롤리 딜레마’. 다수를 살려 공리를 최대화하는 게 옳다는 주장, 누군가를 희생시켜 다른 사람의 이익을 도모하는 건 비윤리적이라는 반론이 공존한다. 그런 트롤리 딜레마와 비슷한 상황과 마주한 과학자가 있다. 3년 전 면역항암제 개발이라는 연구 목표를 위해 의료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자기 실험’을 감행한 황태호(62·부산대 의대 약리학교실) 교수다. 법을 지켜 멈출 것인가, 과학자의 소신대로 밀어붙일 것인가의 기로에 선 그는 전환기 레버를 당겼다.

항암 바이러스 주입해 면역세포 변화 관찰 ‘자기 실험’

식약처 승인받지 않은 실험 처벌에 항소해 무죄 받아

“윤리 문제 알았지만, 23년 연구의 허들 넘어야 했다”

바이러스 면역 여전히 미지의 영역…틀 깨는 도전 필요

황 교수의 자기 실험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자기 몸이라 하더라도, 다수를 위해 소수의 신체적 완전성 훼손을 감수·용인하는 풍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가벼이 넘길 수는 없다. 다만, 그의 약사법 위반 혐의가 유죄에서 무죄로 뒤집혀 확정되는 과정에는 묵직한 메시지가 있었다. 한 과학자의 못 말리는 열정은 우리 사회시스템에 어떤 ‘면역 반응’을 일으키고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지난 7일 양산부산대학병원 교수연구동에서 황 교수를 만났다.

내 핏속 T세포 변화를 보다

황 교수의 무죄 판결이 알려진 건 지난 8월 중앙일보의 단독 보도를 통해서다. 항소심 판결(6월 18일)이 난 지 2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황 교수의 자기 실험을 경찰에 고발했던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수사하고 기소한 경찰과 검찰도 불편한 결과를 세상에 알릴 이유가 없었다. 당시 필자의 인터뷰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던 황 교수는 판결 약 5개월이 지나자 과학자로서 자신이 한 일의 가치를 설명할 필요를 느꼈다고 했다. 자기 실험에 대해서는 “나에겐 딜레마 상황이 아니었다. 20년 넘게 인간 면역 체계를 연구해 온 과학자로서,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차분한 경상도 억양 속에 확신이 넘쳤다.

황 교수의 실험 내용은 항암 치료를 위해 개발 중인 의약품(항암 백시니아 바이러스)을 체내에 투입한 다음 신체의 면역세포(T세포 등)에 나타나는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다. 황 교수는 1주일간 입원해 20여 차례에 걸쳐 혈액 수백 밀리리터를 채취하고 분석했다. 첫 24시간은 4시간 간격으로 피를 뽑았다고 한다. 황 교수는 “호중구(백혈구)가 단순한 보조자가 아니라 T세포의 변화에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게 연구의 핵심 성과”라고 설명했다. 이어 “바이러스가 T세포를 직접 공격하지 않음에도, 호중구를 매개로 T세포를 제거한다는 사실은 놀라운 발견”이라고 덧붙였다.

꼭 자기 실험을 해야 했나.

“4시간 간격으로 피를 뽑는 일은 암 환자에겐 할 수 없는 실험이다. 건강한 사람을 상대로 한 실험은 당국의 승인이 나지 않는다. 수천 마리의 생쥐를 상대로 한 실험은 연구자에게 갈증만 남겼다. 사람에 바이러스를 투여하고 생성되는 면역학적 언어를 읽어야 했다. 허들을 넘어야 했다. 바이러스를 주입하니 내 피에서 짧은 시간에 T세포가 급격히 감소했다가 다시 리모델링하는 과정이 나타났다. 짧은 시간에 다른 세포들과의 관계 속에서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전 환자들의 혈액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었고, 동물 실험에서도 다시 확인했다. 23년째 연구하며 갈증을 느꼈던 과학자에게 너무나 필요한 실험이었다. 나 자신이 실험 대상이 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앞서 비슷한 연구는 없었나.

“세계적으로 처음이다. 하지만, 국제 논문을 내는 데에도 자기 실험 이슈가 결코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여전히 윤리적으로 벗어나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있다. 윤리적 쟁점을 부인하는 건 아니다. 설득시켜 나가야 할 문제다.”

면역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

이번 실험의 의미는.

“우리는 과학이 엄청 발달했다고 생각하지만, 인류는 생명 현상의 본질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바이러스 분야는. 코로나 때 경험했지 않았나. 똑같은 바이러스라도 사람에 따라 증상이 없거나 중환자가 되기도 했다. 유행처럼 mRNA 백신 등이 연구되지만, 결론은 여전히 ‘마스크, 격리, 백신’ 아닌가. 결국 바이러스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결정하는 것인데, 사람의 몸이 결정하는 그 과정을 모른다. 사람의 면역세포 변화를 시간대별로 본 연구가 없었다. 바이러스 면역은 여전히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이다.”

실험이 두렵지 않았나.

“막상 30억개나 되는 바이러스를 주사하니 약간 겁도 났다. 환자를 대상으로 실험할 때 당연히 맞으라 하던 일인데, 내가 맞는 상황이 되니 환자의 처지가 조금 더 와 닿았다. 연구진의 관리하에 안전하게 진행됐다.”

동료나 가족이 말리지 않았나.

“가족들에겐 실험을 알리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천주교 신자인 아내가 기도해줬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분야이기에 동료들도 대체로 따라주는 편이다. 내 몸 상태를 체크한 선배도 경찰 조사에서 ‘내가 안 도와줘도 결국 실험을 할 사람이어서 도왔다’고 했다더라.”

무죄 판결받고 인터뷰에 응하지 않은 이유는.

“있는 그대로 보도되지 않을까 봐 가급적 언론을 피했다. 그런데, 여전히 형식 논리로 승인받지 않은 실험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어서 실상을 좀 얘기하고 싶었다. 또, 23년째 하는 연구의 가치가 좀 더 알려지고 연구에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3년6개월 만의 무죄

황 교수는 약 3년 6개월간 식약처의 고발과 경찰 수사, 검찰의 약식기소, 정식재판 청구, 1·2심 판결을 겪었다. 수사 과정과 판결 내용은 우리 사회가 트롤리 딜레마를 풀어가는 과정 같다. 황 교수는 2022년 1월 개발 중인 면역항암치료제를 자신의 몸에 주사했다. 2주간 혈액을 채취해 호중구와 면역세포(T세포)의 변화를 관찰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실험 계획을 승인받지 않았다. 식약처 고발로 경찰과 검찰 수사를 받고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이에 황 교수가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윤리적인 논란은 있을 수 있겠지만, 개발 중인 의약품을 자신에게 투여한 것을 불법 임상시험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1심 법원은 지난해 9월 유죄 판결의 선고를 유예했다. 자기 실험도 식약처의 승인이 필요한 임상시험이고, 무분별한 의약품 투여 등 공익상 위해나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위법성과 위험성이 중하지 않은 점과 범행 동기 등을 고려해 2년 뒤면 무죄 판결과 같아지는 선고유예를 한 것이다. 황 교수는 항소했다. 2심 법원은 자기 실험의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했다. “약사법 위반은 맞지만, 사회 통념상 허용될 만한 행위로서 처벌 대상이 될 정도의 위법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려운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또, 개인적 이익이나 목적을 위한 실험이 아니었고, 그 과정도 식약처가 제재하는 ‘공익상 위해나 중대한 안정성·윤리성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됐다. 황 교수는 “연구 행위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은 판단이어서 연구자로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국내 연구, 팔로워 아닌 리더가 돼야

앞으로의 여정은 어떻게 되나.

“법원과 식약처 등의 이해를 얻어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실험 결과를 국제학술지에 발표하고 추가 임상시험도 진행하게 될 것이다. 국제적 관심도 더 커질 것으로 본다. 무죄를 받았지만, 윤리적으로도 무결함을 뜻한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 그런 만큼 면역치료제 개발에 더 집중하겠다.”

연구 지원 시스템에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의 연구 지원 시스템이 남을 따라 하는 ‘팔로워’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연구도 유행을 따라간다. 남들이 하지 않은 새로운 연구를 하기 어려운 구조다. 팔로워가 아닌 리더를 만들어야 한다.”

후학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전공의 파업 때 레지던트인 제자들에게 가끔 이런 얘기를 했다. ‘너 뭐 잘났노’라고. 제 생각에 의학은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고 의사들에게 그런 소명이 던져져 있는데, 너그가 뭘 그렇게 잘났다고 시간을 보내고 있느냐고. 지금 의대생들이 과학을 더 잘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의대생들은 실패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학생은 ‘저 삼수 했는데요’라고 반박한다. 제가 말하는 실패는 주어진 길이 아닌 다른 것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걸 말한다. 조금 늦어지는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벗어난 시도와 실패를 해 봐야 새로운 것이 나온다. 팔란티어에서 고졸 출신을 뽑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본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벗어난 사람들의 뭔가 다른 재능에 기대를 거는 것이다.”

◆황태호 교수=부산대 치대(82학번)를 졸업하고 생리학 박사가 돼 2002년부터 미국과 한국에서 면역 치료제 연구를 해왔다.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면역 분석 관련 논문을 수차례 게재했다. 신라젠을 창업했다가 경영진과 결별하고, 바이오녹스라는 회사의 최고기술책임자(CTO)와 부산대 의대 약리학 교수를 겸하며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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