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조지아주에 10조원을 투입해 지은 배터리 공장에서 300여 명의 한국인이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되면서 현지 인력만으로는 공장 건설은 물론 운영도 어려운 한국 기업들의 현실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이후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제조업 공장을 대거 지었지만 현지 인력의 숙련도 부족 등으로 적잖은 어려움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지을 때 겪는 첫 번째 장벽은 인·허가 문제다. 환경·안전 규제의 경우 연방 정부와 주 정부로부터 각각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주마다 규제 기준이 다르다. 이를 어렵게 맞춘다 해도 건설 현장에서 필수적인 용접공부터 현지인으로 구하기가 쉽지 않다. 미국이 배출하는 용접공이 워낙 적은 데다, 한국 기업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인력은 더 부족하기 때문이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공장 설계·시공·감리 등이 굉장히 세밀하게 나뉘어져 있어서 준공까지 한국보다 시일이 더 많이 걸리는데 인력 부족도 심각하다”라고 지적했다.
공장을 짓더라도 난관은 계속된다. 우선 현지에서 숙련 인력을 구하기가 어렵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2005년 앨라배마주 현대차 공장 준공 이후 20년 동안 시행착오 끝에 제조 인력을 양성했고, 현지화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진출 초기에는 조립·용접 기술자를 구하기 쉽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한다. 현재는 자동화 공정이 도입됐지만 최종 조립 및 품질 검사엔 숙련 인력이 필수다.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만 해도, 미국산은 중국산 테슬라보다 단차 등이 심해 조립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라며 “그만큼 미국에는 섬세한 조립 기술을 가진 인력이 부족하단 의미”라고 말했다. 게다가 고용 이후 노동의 질도 떨어진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기껏 훈련시켜 놨더니 몇 달 만에 공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미국에선 너무 많다”라고 말했다. 일부 공장에선 고용한 현지인 중 마약 문제 등으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한국 기업들이 최근 10년새 미국에 지은 배터리·자동차·반도체 등 최신 공장에선 숙련 기술직이 더 중요하다. 미국 내에서 제조업 일자리는 손에 기름 때 묻히는 단순 노동으로 여겨지지만, 요즘 첨단 설비를 갖춘 공장은 다르다. 단순 노동은 자동화가 진행된 편이고, 공장의 생산성을 좌우하는 건 복잡한 기계 조작과 유지 보수를 맡는 기술 인력들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공장은 첨단기술과 전통 제조업의 노동집약적 생산 방식이 결합돼 있는 곳”이라며 “현지 인력을 교육시켜서 수율을 일정 정도 끌어올리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기 때문에, 초반에는 한국에서 공장을 돌려본 인력의 참여가 불가피하다”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건을 추진하는 조선업도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 미국에는 조선 숙련공이 아예 없는데다, 선박 설계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대학도 미시간대 조선해양공학과 한 곳뿐이다. 이에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한화오션은 한국에서 50명을 파견해 현지 인력을 교육 중이다. 이신형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양질의 인력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면 마스가 프로젝트도 순탄하게 진행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현지 직접투자가 늘어 미 제조업 종사자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실제로 미국 내에선 이미 있는 제조업 일자리를 채우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 인력에 대한 개방 없이는 제조업 재건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 공영방송 NPR의 지난 5월 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 중 약 50만 개는 인력 부족으로 채워지지 않은 상태다. 딜로이트가 지난해 미국 제조 기업 200곳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65% 이상은 “인력 채용 및 유지”를 최대 과제로 꼽았다. 딜로이트는 “2033년까지 추가로 380만 명의 제조업 근로자가 필요할 전망인데, 인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최대 190만 개가 채워지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 부과로 현지 공장 수요가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미국 내 제조업 인력 부족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결국 미국 정부가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고 요구만 할 게 아니라 내부에 제조업 인력을 키우고 외국 전문 인력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민간 노동력의 19.2%는 외국인이 차지했으며, 전년(18.6%) 대비 0.6% 포인트 증가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트럼프 정부는 대규모 생산시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면서 현지 인력 양성은 소홀히 하고 있다”며 “결국 한국인들이 현지 인력을 교육해야 하는 상황인데, 양국 근로자들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도와야지 이를 오히려 방해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