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이민 당국이 미국 조지아주 서배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직원 등 475명을 잡아 가두며 내건 명분은 ‘비자’였다. 전자여행허가제(ESTA)·방문비자(B1·B2)로 공장에서 일한 것이 ‘체류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활동’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 기업의 노동자가 미국의 취업 비자를 받는 것이 녹록지 않다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비자뿐 아니라 법·제도의 차이가 앞으로 협력에 중요한 사항이 될 것”이라며 “이 기회에 근본적으로 비자 문제에 대한 해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7일 산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조선·반도체·철강·배터리 등 미국에 진출한 한국 제조 기업들은 미국 출장자들의 비자 상황을 전수 점검하는 등 미국의 비자 단속에 대비하고 있다.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된 한국인들 대다수는 주로 ESTA나 B1 비자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우리 회사에서 미국에 출장을 간 사람들의 비자를 모두 확인한 결과 다행스럽게도 비자 문제는 없었다”고 한숨을 돌렸다. 이어 “한·미 협력으로 대미 투자가 많아지는 상황이지만 정작 정규 비자는 ‘하늘의 별 따기’”라며 “우리가 볼 땐 미국이 한국에 협력하자고 해놓고 정작 사진이나 영상 나온 것을 보면 범죄자로 연행을 했는데,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에서 인정되는 정규 취업비자는 주재원 비자인 L 비자, 전문기술인 비자인 H-1B 비자 등이 있지만, 한국 기업은 미국에 방문할 때 대부분 ESTA나 B1 비자를 활용했다. 취업비자를 확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요건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대규모 인력을 보내는 데도 한계가 있다.
실제 미국 이민국(USCIS)에 따르면 H-1B의 상한은 8만5000개이지만, 2026년 신청자 수는 총 35만8737명이다. 신청자의 약 24%만 실제 발급받는 것이다. L 비자는 승인 요건이 모회사와 자회사 등 인원으로 한정돼 협력업체 인원 파견이 어렵다.
또 다른 산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 하나의 본보기로 이번에 한국인들을 대규모로 체포·구금한 거 같아 솔직히 난감하다”며 “미국은 한·미 통상 협력에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하는데 여전히 불투명한 것이 많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공장을 만들려면 전문가·숙련 근로자들이 가야 하는데, 모두 다 주재원으로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투자를 하면 한꺼번에 비자를 내주든지 어떤 식으로든 절차를 개선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이 정부와 협력해 선제적으로 미국의 법·제도를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병규 법무법인 인화 외국변호사(미국 뉴욕주)는 “지금은 기업에서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ESTA나 방문비자를 발급받았는데, 이에 대해 미국 현지에서도 우려가 컸다”며 “비자 문제는 물론이고 환경·폐기물·노동 문제 등 우리 기업이 미국에 투자할 때 준수해야 할 것을 차근차근 갖추지 않으면 미국 내에서 존속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호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급선무는 미국에 구금된 우리 근로자들이 돌아오는 일”이라면서도 “문제가 터져나온 만큼 비자 외에도 환경·노동 등 다른 문제는 없는지 기업과 정부가 사전에 파악해서 선제적으로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