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과 자본의 옵션

노란봉투법이 민주당에 의해 단독 처리되었다. 이 법은 향후 한국 경제의 노동과 자본 관계와 노동 시장 구조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각 경제 주체들은 이 법에 어떻게 대응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노란봉투법 자체의 역사와 한국의 노동-자본 관계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
먼저 노동 쪽의 구조를 살펴보자. 한국의 임금협상은 기업 단위 교섭구조로 파편화되어 있으며 정규직 위주로 조직되어 있다. 이로 인해 비정규직과 하청업체들은 1987년 이후 정규직 노조들의 임금상승 투쟁에 따른 자본의 비용상승을 감당하는 ‘쿠션’ 역할을 해왔다. 더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작업은 비정규직과 하청업체가 도맡아 하면서, 임금 수준은 오히려 차별적인,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직 계열화된 원하청 종속 관계가 일반화된 것이다. 이로 인해 대기업 정규직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임금을 받는 반면, 하청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은 최악 수준의 임금 차별과 열악한 처우를 감당하게 됐다. 고도화된 한국 자본주의의 불평등 구조가 가져온 명암이다. 원하청 관계의 최대 수혜자는, “자본과 함께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들의 등에 빨대를 꽂아온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민주노총 전직 활동가와의 인터뷰 중).
대기업 정규직, 세계 최고 대우
처우 차별받는 하청·비정규직
정규직 노조는 정작 논의서 빠져
상급노조 영향력 극적 확대 노려
자본의 마지막 선택은 시장 이탈
법 적용 대상·한계 다시 논해야

“원·하청 관계 최대 수혜자는 정규직”
노란봉투법은 중앙 노조 활동가들의 숙원 사업이었다. 명색이 산별노조, 그 위의 중앙노조가 노동자 다수가 고용되어 있는 중소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눈물과 열망을 도외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난 수십 년 간 이들은 사용자를 대상으로 임금과 고용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파업을 해도 하청·파견업체 고용주는 실질적 권한이 없고, 원청은 이들을 도외시하면서 아무런 성과를 낼 수 없었다. 하청과 외주로 파편화된 노동시장에서 이들의 좌절은 켜켜이 쌓여갔고, 파업마다 고용주들이 때리는 천문학적인 손해배상에 몇몇 노동자들은 유명을 달리했다. 노란봉투법은 그 쌓여온 눈물과 좌절의 기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란봉투법이 이 불평등을 치유해줄 것이라 보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노란봉투법의 역사가 노란봉투법이 가져올 후과를 정당화시켜 주지도 않는다고 본다. 노란봉투법의 가장 큰 문제는 자본을 비롯해 테이블로 끌어와야 할 당사자 중 그 원하청 관계의 최대 수혜자였던 정규직 노조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노사 관계 권력 산별노조로 쏠릴 듯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먼저, 왜 양대 노총은 노란봉투법에 올인했을까. 다음으로, 자본은 이 법에 어떻게 반응할까.
양대 노총의 활동가들은, 정규직 위주 현장 노조들 위에 얹혀 있는 상급노조의 힘을 노란봉투법을 통해 극적으로 확대시키고자 한다. 무엇보다, 한계와 범위가 불분명한 하청의 범위로 인해 산업현장에서는 파업을 통한 임금 상승 및 처우 개선 요구가 빗발칠 것이다. 대기업들은 이전에는 외면했지만, 이제는 협상에 응해야 한다. 법이 그렇게 규정하니까. 수백 수천의 하청업체의 요구를 모두 응할 수 없으니 기업들은 통일된 협상자를 요구할 것이고, 산별노조는 바로 이때 개입할 것이다. 보건의료노조 외에는 제대로 된 산별 협상을 해보지 못했던 금속노조나 화섬식품노조, 공공운수노조가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다. 권력이 산별노조로 쏠리기 때문이다. 이들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내세우며, 혹은 더 힘들고 위험한 일에 대한 적합한 보상을 요구하며, 원청 자본 측에 더 좋은 조건의 딜을 요구할 것이다.

원청 정규직 노조, 희생 받아들일까
자본 측의 옵션은 뭘까. 옵션은 네 가지가 있다. 무대응(no action), 응답(response), 자본 파업, 자본 탈출.
먼저 하청업체들의 아우성에 원청 대기업들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으면, 이해 당사자들은 법원에 모일 것이다. 법원은 다양한 사업장에서 밀려 들어오는 쟁의 관련 소송들로 마비가 될 것이다. 결국, 법원이 하청의 적절한 범위를 정해줄 때까지 산업 현장의 혼란은 계속될 것이고, 몇 년이 소요될 지 모르는 이 기간 동안 피해는 국민과 전체 노동자들이 질 것이다.
원청 대기업이 응답한다 함은 주어진 예산의 한도 안에서 자원을 재배분하는 것을 뜻한다. 두 가지 방안이 있다. 첫 번째는 기존 원청 정규직들에 가던 몫의 일부를 하청업체에 돌리는 것이다.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던 수출 대기업 정규직들에게 변화된 법환경에 적응을 빌미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정규직 노조는 당연히 들고 일어날 것이다. 왜 하청 노동자를 위해 우리가 희생하냐는 조합원들의 분노로 우리는 또 다른 시위행렬을 볼지 모른다. 두 번째 방안은 정규직 노조 설득을 포기하고 영업이익의 일부를 추가로 하청에 배분하는 것이다. 당연히 기업 재무지표가 악화될 것이다. 이번에는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탈하고 주가가 하락하면서 주주들이 들고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정규직 노조는 이번에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럴 돈 있으면 우리 더 달라고 할 것이다. 노란봉투법의 눈물에는 자본뿐 아니라 정규직 노조도 개입되어 있다. 기업실적이 아래로 분배되는 것을 막아온 주체는 다름 아닌 정규직 노조인 것이다.
자본 파업과 자본 이탈의 가능성
위의 응답 방식을 고려하거나 실행해본 원청 고용주들은 다음 두 가지 옵션을 만지작거릴 것이다. 허쉬만이 이야기했던 충성(무반응 혹은 해태) 옵션이 여의치 않으면 다음은 저항(voice)과 이탈(exit)이 남는다. 자본의 저항은 자신들에 호의적인 정당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으나, 그 정당은 계엄과 함께 풍비박산 나 지리멸렬 중이다. 다른 저항 방법은 자본 파업이다. 집단적으로 투자를 줄여 실업률을 높이고 경기를 엉망으로 만들어 집권당의 재집권 확률을 낮추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옵션은 정권 중반기나 말기에, 재집권 확률이 높지 않을 때 가능하다. 트럼프 4년을 버텨야 하는 수출 대기업들에게 국내에서의 또 다른 싸움은 불가능한 옵션이다.
이제 마지막 옵션인 이탈, 탈출이 남는다. 자본은 원래 국적이 없다. 사주와 노동자만 있다. 법인은 복수 국적이 가능하다. 자본의 이동은 자유롭다. 앞의 모든 옵션이 다 소진되면, 혹은 옵션의 비용이 너무 크다고 판단되면,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고) 자본은 조용히 국경을 넘을 것이다. 그 후과는 자본 파업보다 더 클 것이다. 한번 이탈한 자본은 여간해서는 잘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탈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현대차는 (최근 짓기 시작한 전기차 공장을 제외하면) 지난 20여년 동안 국내에 신규공장을 짓지 않았다. 여기에 짓지 않고 다른 곳에 지으면 그게 자본 탈출이다.
노란봉투법이 자본 이탈을 가속화 시키지 않을 것이라 기대한다면 당신은 지나친 낙관주의자다.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의 힘이 너무 커지면 자본은 그 사회를 언제건 등진다. 선진국의 노동조합들이나 그 연합체들(예를 들면 독일의 IG Metall)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보다는 임금상승 자제를 통해 자본을 달래 가며 고용 유지에 더 큰 방점을 두는 이유가 자본 탈출의 위험 때문이다.

취약 노동자 내몰 노란봉투법의 역설
이제 상급노조 입장에서 노란봉투법 모델의 행복한 결말 시나리오를 작동시켜보자(앞의 자본의 옵션 중 ‘응답’ 옵션에 해당된다). 마침 파업 중인 현대차 노조가 다른 버스로 상경한 하청부품업체 및 비정규직 지회들과 본사 앞에서 맞닥뜨렸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중앙은 정규직 노조의 양보를 설득하는 한편 하청업체들을 조율하여 현대차가 하청업체들의 기술개발과 복지를 지원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기준을 설정하여 사내하청과 비정규직들의 시간당 임금을 정규직의 90% 수준으로 올리기로 합의한다. 정규직 노조는 노동연대의 차원에서 정년연장 요구를 계약직 전환 보장으로 바꾸고, 대신 영업이익 추가분배 요구도 포기한다. 사용자 측도 어차피 정규직 노조의 정년연장과 성과급에 쓰였을 돈이기에 흔쾌히 합의한다. 노란봉투법의 해피 엔딩이다. 이 행복한 노란봉투법 시나리오의 대전제는, 선진국 노동시장에서는 흔하지만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정규직 노조와 조합원들의 양보와 자제다. 이 양보와 자제 없이 노란 봉투법은 작동하지 않는다. 노란봉투법은, 정규직 단위노조의 양보를 이끌 힘이 부족한 산별노조와 양대 노총이 집권여당의 입법의 힘을 빌려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에게 내민, 상환 능력이 부족한 어음에 가깝다.
노란봉투법은 그 법안이 지지하려고 했던 바로 그 노동계층을 오히려 거리로 내몰 것이다. 노란봉투법은 자본의 비용을 극적으로 증가시킬 것이고, 자본 탈출이 불가능한 산업 외에는 탈출을 북돋음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힘든 국내 고용시장을 한층 어렵게 만들 것이다. 특히 청년, 비정규직, 중소 하청업체가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단위 사업장의 정규직 노조는 짐을 나누어 지자는 자본과 사회의 요구에 반기를 들 것이다. 조직되지 않은 비정규직은 해고의 칼날을 맞을 것이고, 외주나 하청은 노조가 없는 곳(외국업체나 외국인)으로 돌려질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 옵션(응답)을 바라는 상급노조 및 하청 노동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자본은 첫 번째 옵션(무대응)을 행사하며 시간을 끌며, 조용히 마지막 옵션인 자본 이탈을 실행할 것이다. 트럼프 관세에 대응해야 하는 수출 대기업으로서는,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격이다.
국민 다수는 파업 참여했다고 노동자가 수십 억 손배소 맞는 일 없도록 하는 법, 중대재해에 노출된 노동자들의 생명과 권익을 보호하는 법안에 흔쾌히 찬성할 것이다. 하지만, 하청의 경계와 책임소재도 정해놓지 않고 통과된 법으로 인해 국민경제가 혼란에 빠지고 후퇴하는 것을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국가, 정당, 자본, 노조는 지금이라도 머리를 맞대고, 이 법의 적용 대상과 한계를 다시 논하라. 양대 노총과 산별노조들은 향후 교섭과 조율 과정에서 정규직 노조의 양보를 어떻게 받아낼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으라. 이에 대한 답이 없이 계속 몰아붙이면, 자본 이탈의 행렬 속에 노동도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게 자본주의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