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화폐를 달러로?...트럼프 정부의 '달러라이제이션' 실험

2025-11-03

[서울=뉴스핌] 오상용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달러 패권 유지를 위해 달러의 글로벌 사용 확대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백악관 관리들은 더 많은 국가들이 달러를 주요 통화로 채택하도록 장려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특정국의 법정화폐를 달러로 대체하거나 병용하는 '달러라이제이션(dollarisation)' 실험이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를 중심으로 본격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중국과 브라질 등 일각의 달러 패권 약화 시도를 무력화하려는 취지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사용을 확대하려는 노력도 그 일환으로 평가됐다.

FT는 "백악관을 비롯한 정부 부처 관계자들이 지난 8월 존스홉킨스대학교의 달러라이제이션 정책 전문가 스티브 행크 교수를 만나 행정부가 이러한 정책을 어떻게 추진할 수 있을지 논의했다"고 전했다.

행크 교수는 FT에 "이 사안은 행정부가 매우 진지하게 검토 중인 정책이지만, 최종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달러라이제이션'을 둘러싼 미국 정부의 최근 논의는 재무부가 아르헨티나 페소화 안정을 위해 금융 지원(통화스와프 체결 및 외환시장 개입)에 나선 가운데 나왔다.

일부 관리와 경제학자들은 화폐(페소화) 신뢰가 자주 무너지는 아르헨티나를 달러라이제이션의 유력한 후보로 인식한다. 다만 미국과 아르헨티나 양국 모두 공식적으로 이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워싱턴 내에서는 최근 중국이 이머징 국가들과 교역 과정에서 달러 결제 비중을 줄이도록 압박하는 움직임을 우려하고 있다.

행크 교수는 8월말 백악관의 '정치적 인물(political personality)'이 이런 우려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고 전했다. 행크 교수는 "그 인사는 내게 이미 분명했던 사실을 재확인시켜주었다"며 "행정부 내 고위급 인사들 중 일부는 달러의 국제적 역할을 강화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행크 교수는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관련 사안을 전면적으로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그래서 내가 참여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달러라이제이션에 대한 (미국 정부의) 관심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사용을 확대하려는 노력과도 맞물려 있다"고 덧붙였다.

백악관 측은 행정부 관리들이 행크 교수와 만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달러라이제이션을 주변국에 적극 권유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공식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쿠시 데사이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 강세와 달러의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며 "행정부는 국가적 중요 사안에 대해 대통령의 주요 우선순위를 지원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정기적으로 청취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대화와 간담회를 행정부의 공식 정책 입장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번 논의는 미 재무부가 아르헨티나에 200억 달러 규모 금융 지원을 제공하기로 결정하기 전인 8월에 시작됐다. 행크 교수는 당국자들에게 달러라이제이션의 잠재적 적용 대상 국가로 아르헨티나와 함께 레바논, 파키스탄, 가나, 튀르키예, 이집트, 베네수엘라, 짐바브웨 등을 제시했다.

행크 교수는 8월 중순과 말에 당국자들과 두 차례 대면 회의를 가졌는데 모임에는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와 국가경제위원회(NEC), 국가안보회의(NSC)의 고위 당국자들이 참석했다. 두 번째 회의에는 미 재무부 관계자와 앞서 거론된 백악관의 '정치적 인사'도 동석했다.

달러라이제이션은 아르헨티나가 반복적으로 겪어온 통화 위기의 해결책으로 자주 거론돼 왔다. 자유시장주의를 표방하는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2023년 대선에서 내세운 핵심 공약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에콰도르와 엘살바도르 등 일부 중남미 국가들은 이미 달러를 통화(교환 결제 수단)로 사용하고 있다.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제이 뉴먼은 "(아르헨티니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달러라이제이션을 도입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경기 부양으로 유입된 달러가 결국 해외 계좌 등으로 빠져나간다"고 말했다.

반면 국제통화기금(IMF)은 아르헨티나의 달러라이제이션 도입에 부정적이다. 아르헨티나가 달러를 자국 통화로 받아들일 경우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에 종속돼 저성장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osy75@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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