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규슈 나카쓰의 카제노오카(風の丘·바람의 언덕)는 고분들이 산재한 중세의 네크로폴리스다. 4세기부터 조성된 매장묘와 불교가 성행한 8~10세기의 화장묘가 한곳에 밀집해 묘제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지다. 그 언덕 아래에 1997년 새로운 화장장이 건설되어 1000년 만에 장례의 공간이 다시 열렸다.
바람 부는 초원의 구릉 위에 건물들은 추상 조각같이 대지에 꽂혀 있다. 삼각형의 강렬한 코르텐 철판 뒤에 유족 대기실이 자리하고, 8각형의 장제실은 바람에 나부끼듯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주요 시설들은 일정한 거리로 떨어져 있고 그사이를 긴 복도로 연결한다. 유족들은 이동을 잠시 멈추고 삶과 죽음을 성찰할 시간을 갖는다.

입구의 사각형 광장 중심에 심은 한 그루 나무는 의미심장한 오브제가 되고, 음영이 얼룩진 긴 벽면을 따라 화장장으로 들어간다. 얕게 반사되는 연못 건너의 화장로에서 시신이 처리되는 동안 유족들은 대기실에서 위안의 시간을 갖는다. 대기실 통창 너머로 펼쳐지는 바람의 언덕은 지극히 평온한 풍경이지만, 그곳이 중세의 묘지였다는 사실에 죽음이 곧 평안이라는 위로를 받는다.
기능적으로 화장로와 장제실이 주시설이지만, 공간적 주인공은 연결 통로 곳곳에 삽입된 바람과 물과 빛과 그림자라는 자연이다. 열주를 통해 일렁이는 풀의 움직임은 생의 유한함을, 얕은 연못에서 반사되는 음영은 고인의 부재를 은유한다. 로비 천창에서 내려오는 빛의 폭포는 자연이 주는 안식이다. 엄숙한 장례 의식 사이사이에 자연은 위로를 주고 미니멀한 건축공간은 기억을 소환한다.
건축가 후미히코 마키(1928년생)는 모더니즘에 일본의 전통을 녹여낸 최고의 대가다. 일본 특유의 공간적 연속성을 현대에 구현하고, 장소의 개성을 극대화해 시적인 건축을 창조했다. 도쿄의 힐사이드 테라스가 도시 속 마을의 정경을 이루었다면 이 화장장은 생사를 넘나들며 이입되는 자연의 풍경을 그려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전 총장





![[안성덕 시인의 '풍경'] 땅거미](https://cdn.jjan.kr/data2/content/image/2025/10/24/.cache/512/20251024580006.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