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 '공중 화장실' 손 댄 유니클로 2세…스크린까지 탔다, 뭔일

2025-10-26

일본 도쿄 시부야구(渋谷)엔 ‘이게 화장실인가?’ 싶은 건물들이 있다. 공중화장실이라기엔 평범하지 않은 외형 때문이다.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들과 세계적인 디자이너 등 16명이 각기 자신의 철학을 담아 지은 시부야구의 공중화장실 17곳이다.

이 화장실들은 영화에도 등장했다. 2023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출전해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던 ‘퍼펙트 데이즈(2023)’이다.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 속에서도 매 순간이 왜 특별한지, 영화는 화장실 청소부로 살아가는 한 남성의 삶을 잔잔히 조명한다. 빔 벤더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도쿄의 풍경에 애정을 담은 듯한 영상미를 선보였는데, 주인공 배역의 야쿠쇼 코지(役所広司)가 청소하는 장면마다 등장하는 화장실들이 영상에 색채를 더한다.

도쿄 시부야 공중화장실 17곳

유니클로 2세 파격 제안·추진

세계적 건축가·디자이너 참여

빔 벤더스 감독도 반해 영화화

영화에 매료된 사람들이 실제 영화 배경이 된 화장실들을 찾아오기도 한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청소를 마치고 홀로 끼니를 때울 때 찾아가는 화장실 근처 한 신사. 나뭇잎 사이로 비친 햇살, 즉 ‘코모레비(木漏れ日)’를 사진기에 담던 곳으로 ‘조금씩 다른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긴다’는 주제를 표현한 장면에 등장한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사샤(카자흐스탄)는 “여행 컨셉트를 ‘퍼펙트 데이즈’ 영화로 잡았다”며 “화장실들이 잘 유지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발점은 일본의 공중화장실 개조 프로젝트인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였다. 지자체가 기획한 공공 프로젝트도 아니고, 기업의 사회 공헌 프로젝트도 아니다. 놀랍게도 개인이 기획했다. ‘유니클로’의 모기업 ‘패스트리테일링’의 경영진인 야나이 코지(柳井康治·48·사진)가 그 주인공이다. 유니클로를 창업한 야나이가의 차남인 그를 직접 만나 물었다.

원래 장애 관련 시설을 염두에 뒀다고 들었다. 왜 화장실을 바꾸겠다고 생각했나?

“처음에는 장애를 가진 분들이 기뻐할 만한 일을 해볼까 했다. 그런데 유니클로라는 브랜드 자체가 장애·비장애를 구분하지 않고 누구나 쓸 수 있는 브랜드를 지향한다. 가족의 일원으로 사회를 위해 뭔가를 한다면 역시 ‘모두를 위한 무엇인가’여야 했다. 누구나 하루 한 번 이상 가는 곳이 화장실이니까 화장실을 멋진 공간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건축미가 유독 돋보였다.

“일본에선 공중화장실을 ‘4K 화장실’이라 부른다. ‘어둡고 냄새나고 더럽고 무섭다(쿠라이·쿠사이·키타나이·코와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여성과 아이, 장애인이 쓰기 어렵고 애초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 과제를 해결하려면 전례 없는 화장실이 필요했다. 어디에 있는지 알기 쉽고 훌륭한 퀄리티를 보여주려면 ‘건축’이 열쇠라고 봤다.”

하루 세 번 청소 비용도 부담

화장실 본연의 목적을 위해선 청결함이 중요하다. 기존 화장실과 다른 접근이 있었나.

“17곳을 재건하기 전 기존 화장실들을 돌아봤다. 하루 한 번 청소하고 있었지만,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하루 세 번’ 청소를 요청했다. 비용 부담이 컸지만, 원칙으로 삼았다. 하루 세 번 청소해도 오염되는 게 현실이니 겨우 유지하는 정도다. 도쿄올림픽의 키워드가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환대)’였기 때문에 청결하고 쾌적한 화장실도 그러길 바랐다.”

그는 일본재단과 시부야구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을 섭외했다. 다이와하우스에서 건축을, 화장실 설비는 TOTO가 맡는 등 여러 회사가 참여해 협력하는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이후에도 지속해서 기부를 해오고 있다고 들었다. 얼마나 기부하고 있나.

“시작한 일이니까 끝까지 책임지고 깨끗이 유지하고 싶었다. 시부야구에 계속 청소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얘기했다. 기부 액수에 관해선 이야기를 삼가겠지만, 화장실을 짓는데 들인 돈보다는 훨씬 작다(웃음).”

‘퍼펙트 데이즈’ 영화에 제작자로도 참여했다.

“화장실을 깨끗이 써 달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짧은 영상물들을 만들기로 했다. 빔 벤더스 감독에게 청소하는 분들이 매일 겪는 어려움을 그린 단편 영화를 만들어달라 부탁했는데, 감독이 3~4개 에피소드가 가능하겠다며 시작했다. 그런데 감독이 일본에 직접 와 화장실들을 둘러보곤 프로젝트를 마음에 들어 하더니 각본을 맡은 다카사키 다쿠마(高崎卓馬)와 에피소드들을 발전시켰다. 결국 감독이 먼저 장편 영화로 하자고 제안을 해와 처음엔 놀랍고 믿기지 않았다.”

제작자로서 영화는 어땠나.

“수차례 봤지만, 볼 때마다 느끼는 점과 인상이 다르다. 영화 자체가 ‘코모레비’처럼 오늘 보고 내일 볼 때 또 다르다. 그만큼 해석의 폭이 넓다는 점이 매력이다.”

사회 공헌으로 또 기획 중인 사업이 있나.

“구체적인 것은 당장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사회 과제를 찾는다면 주저하지 않겠다. 화장실도, 영화도 해본 적 없는 일이라 불안과 의문이 있었지만 도전했다. 애초 목적이 ‘모든 사람을 위한 좋은 일’을 찾는 것이었고 그 수단과 방법으로 화장실과 영화가 있었다. 다음에 무엇을 하더라도 먼저 목적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일 교류 도움 되는 일 하고 싶어

영화 개봉 당시 한국에도 방문했다.

“한국을 매우 좋아한다. 한국 프로모션 당시 야쿠쇼 코지 배우와 다녀왔고, 지난달에도 갔다. 야마구치현(山口)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부산과 시모노세키(下関)를 잇는 페리가 있어 한국을 가깝게 느꼈다. 한국의 식품과 미용, 엔터테인먼트가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점이 대단히 훌륭하다. 일본도 한국에 전달할 수 있는 게 더 있으면 좋겠다. 경제를 중심으로 문화와 예술 등 쌍방향으로 교류하는 것이 서로의 발전에 가장 중요하다. 북엇국과 삼겹살, 설렁탕 등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봉준호·이창동·홍상수 감독을 존경한다. 한·일 교류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찾는 대로 적극적으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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