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시간과 정책의 시간

2025-08-05

지난 다섯 번 대선은 모두 전 정권에 대한 국민 불만이 폭발한 반사이익의 결과였다. 신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의 비리를 파헤치거나 정책 실패를 공략하여 정권 초기 국민적 지지를 확보한다. 대통령 후보가 자신의 임기 중 우리나라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어떻게 국정운영을 하겠다는 미래 비전이나 정책 방향도 모른 채 우리는 투표에 임한다. 모두 전 정권에 대한 심판의 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정권 초기에 대통령들은 권력 강화를 위해 정치의 시간을 보낸다. 이명박 정부의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에 대한 검찰 수사, 박근혜 정부의 친박 비박 갈등과 총선 공천 파동,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과 검찰개혁, 윤석열 정부의 당 대표 축출 및 공천갈등 등은 모두 정치력을 강화하여 대통령직을 수행하려는 과욕의 결과였다.

삼각파도의 위기 맞은 한국 경제

정치의 시간으로 허비하면 안 돼

정책은 고도 다차방정식과 같아

정책 성과가 정치 생명도 지켜줘

신임 대통령들이 당선 후 지지율에 도취되어 정치의 시간을 보낼 때 국정운영의 냉혹한 현실은 간과된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적당히 기존 정책을 유지하기만 하면 국정운영이 잘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기에 더더욱 문제가 크다.

정치는 궁극적으로 선거에서 이기는 승자가 독식하는 일방적 게임이다. 하지만 정책은 다양한 변수와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문제를 풀어야 하는 고차방정식이다. 단순한 문제라고 접근하다가는 의도하지 않은 정책 결과를 만나 낭패를 보곤 한다. 문재인 정부도 소득주도성장이나 부동산 대책을 쉽게 보고 추진했지만 실패한 정책이 되고 말았다.

코로나 시기 우리나라는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14조원의 재정을 투입하여 전 국민에게 10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KDI는 소상공인 매출 효과에 단기적 효과는 있었지만 지속적 회복에는 미흡했다고 평가했고, OECD도 전 국민 지급방식이 행정 효율성은 있었지만 소상공인들에 대한 선별적 지원이 더 효과적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미국에서는 스티뮬러스 체크 정책으로 소득 수준별 차등 지원을 했고, 캐나다에서는 식당 등 소상공인들이 영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존 납세 실적을 바탕으로 임대료 및 직원 임금 보조, 무이자 대출, 세금 유예 등 다양한 직접 지원책을 펼쳤다. 국민 모두에 현금을 지불한 문재인 정부의 지원책은 그해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하는 정치적 효과는 컸지만, 소상공인을 살리는 정책 효과는 미미했다. 결국 이재명 정부에서 또다시 소상공인 부실채무 탕감 정책을 들고나오게 만들었다.

이렇게 정치의 시간이 흘러갈 때 정책의 시간은 기회를 잃고 만다. 정치는 쇼가 가능하지만, 정책은 쇼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검찰개혁과 계엄 및 탄핵사태 응징 등 정치의 시간만 보내다가 정책의 시간을 소홀히 하여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을 맞아야 하는가?

최근 중국은 ‘중국제조 2025’정책을 추진한 결과, 10년 만에 대부분의 제조업 분야에서 가격경쟁력으로 우리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중국을 제외하고 모든 제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보이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원자력, 방위산업 등 중화학공업을 비롯하여 가전, 의류, 화장품, 식품은 물론, 더 나아가 반도체, 스마트폰 등 첨단산업까지 제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국가 경제가 지탱되고 있다. 2023년 우리나라 GDP에서 무역의 비중은 87.9%에 이른다. 남북 분단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지정학적으로 매우 취약한 나라가 반세기 만에 최빈국에서 세계 경제 10위권의 대국이 되었다. 일찍이 『아시아의 다음 거인』이라는 책으로 한국 경제를 분석해 유명한 MIT의 앨리스 앰스덴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국은 매년 위기가 아닌 해가 없었지만 놀랍게도 그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해가 없었다.” 그의 지적처럼 한국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인부터 관료, 그리고 온 국민이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로 오늘의 성공을 이루어냈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우리 산업화보다 10년 이상 늦었고,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로 세계 시장이 활짝 열렸고,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에 묶여있었다는 세 가지 호재가 우리 경제를 비약적으로 도약시켰다. 하지만 이제는 중국의 계획경제와 규모의 경제가 우리의 제조업을 위협하고, 신자유주의 무역질서가 붕괴되고, AI가 인류문명사를 바꾸어 나가는 삼각 파도의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

새로운 정권마다 정치의 시간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정책의 시간은 때를 놓치며 흘러가고, 정권이 끝날 때쯤 국민의 원성은 드높아진다. 또 다른 정권을 탄생시켜도 쳇바퀴처럼 도는 이 악순환의 고리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실용주의 정부를 내세운 이재명 정부는 정치의 시간보다 정책의 시간을 챙겨야 한다. 정치의 시간 끝에는 또 다른 정치의 칼날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 정책의 성과만이 정치의 생명도 지켜줄 수 있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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