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검의 세계: 죽은 자의 증언
8화. 북한이 외면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지난 2일 오후 7시 강원 고성의 전통시장 상인회 사무실. 유세차 찾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주민들 간에 이런 말이 오갔다.
금강산 관광이 활성화돼 이 지역에 나름 바람이 불었는데. 박왕자씨 사건 때문에 10년 이상을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안 변합니다.(주민)
박왕자 사건 터진 지가 지금….(이재명)
10년이 넘었습니다. 15년.(주민)
‘박왕자씨 사건’, 즉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은 2011년이 아닌 2008년 발생했다. 이 후보가 성남시장이 되기 전이다.
이 사건 후 2007년 한국 관광객 34만 명이 찾을 정도로 남북 교류의 상징이던 금강산 관광이 전면 중단됐다. 오늘날까지 지역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다.
하지만 여전히 “(박왕자씨가) 미명(날이 밝지 않은 때)에 군초소 근처에 접근한 것이 문제고 초병의 지시에도 도망친 것이 잘못”(2018년 박왕자씨 아들 방재정씨 중앙일보 인터뷰에 달린 댓글)이란 인식이 퍼져 있다. 북한이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 탓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이미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전신)의 조사로 반박됐다. 국과수는 이전에 없던 방법으로 북한의 주장과 다른 실제 사망 시각을 추출해 냈다. 여기선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구체적인 이야기를 공개한다. 정부 관계자들이 북한을 설득하기 위해 사흘간 판문점에서 기다렸던 사연도 전한다.
북한이 통보해온 박왕자씨 피격 경위
#2008년 7월 11일 오전 9시20분, 북한은 금강산 관광사업자인 현대아산 측에 통보했다.
(금강산 관광객인 주부) 박왕자씨(당시 53세·서울 상계동)가 관광객 통제구역을 지나 북측 군 경계지역에 진입했다. 오전 4시50분쯤 초병이 수차례 정지 명령을 내렸으나 불응하고 도주해 경고 사격을 가한 뒤 발포했다.
박씨가 숙소인 비치호텔 201호를 나선 건 오전 4시30분이다. 북한은 박씨가 사망 전 20여 분간 군사통제구역 기점인 펜스를 넘는 등 백사장 3300m를 이동하다 초병의 제지에 응하지 않고 달아나 펜스 200m 앞 지점에서 총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성인 남녀의 평균 걸음걸이 속도가 시간당 4㎞ 정도인데, 치마를 입은 53세 여성 박씨가 평균 시속 9.9㎞ 속도로 이동했다는 얘기다. 사망 장소는 장전항 인근 기생바위와 해수욕장의 중간 지점으로 발표됐다.

#이날 밤 10시30분, 시신을 실은 앰뷸런스가 경찰 승합차 호위를 받으며 서울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