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반부패기구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옛 친구가 연루된 부패 사건에 대한 수사를 재개했다. 앞서 젤렌스키는 ‘수사구조 개혁’을 통해 옛 친구에 대한 수사를 막았다가 오히려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한 발짝 물러선 바 있다. 기회를 엿보던 우크라이나 반부패기구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옛 친구에 대해 전격적인 압수수색에 들어가며 2차전을 개시했다.

우크라이나 국가반부패국(NABU)은 10일(현지시간) “국영 에너지 기업 고위 관계자들이 연루된 부패 의혹과 관련해 전국 70곳에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국가반부패국은 이어 “여러 인물들이 범죄 조직을 구성해 공공 부문, 특히 에네르고아톰 같은 전략적 국영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대규모 부패 구조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에네르고아톰은 우크라이나 전력의 절반 이상을 공급하는 3개의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는 기업이다.
국가반부패국이 겨냥한 인물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친구이자, 동업자인 티무르 민디치다. 민디치는 젤렌스키가 2019년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크바르탈95’를 함께 운영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크바르탈95에서 제작한 코미디 드라마 ‘국민의 일꾼’에서 대통령역을 맡아 인기를 끌며 결국 정계에 입문해 대통령직에 오를 수 있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후인 2021년에도 민디치의 아파트에서 자신의 생일 파티를 열만큼 서로 가깝다. 민디치가 2020~2021년 여러차례 대통령실을 방문한 기록도 남아있다.
국가반부패국은 민디치와 헤르만 할루셴코 현직 법무부 장관이 에네르고아톰 협력사들에게 대금 지급 중단이나 공급자 지위 박탈을 피하게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정부 계약 금액의 10~15%에 해당하는 리베이트를 챙긴 의혹이 있다고 보고있다.

국가반부패국은 민디치 등 젤렌스키 대통령 최측근들에 대한 수사를 올해 초 본격화했다가 한 차례 실패한 적이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국가반부패국 등을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의 감독권 아래에 두는 법안에 서명하고, 우크라이나 여권을 중심으로 러시아의 사주를 받아 무리한 수사를 한다는 비난을 국가반부패국을 향해 집중적으로 퍼부으면서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수사구조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반부패 수사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겹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관련 개혁을 철회했다. 국가반부패국은 가까스로 독립성을 지켰지만, 홍역을 치른 탓에 한동안 섣불리 수사를 재개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국가반부패국은 이번에는 철저한 준비를 통해 반격에 나섰다. 압수수색을 통해 거액의 달러화와 유로화, 흐리우냐화(우크라이나 통화)가 가득찬 돈가방을 언론에 공개했다. 1000시간 분량의 음성녹음도 증거로 확보했다고 밝혔다. 민디치 등이 약 1억 달러(약 1400억원)의 자금세탁을 벌였다는 혐의도 공개했다. 다만 민디치는 국가반부패국의 압수수색 직전 해외로 도주한 것으로 파악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번 사건은 대통령실과 우크라이나 주요 반부패기관 간 오랜 갈등을 다시 부각시켰다”고 소개했다.키이우 인디펜던트도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민디치 관련 수사는 정부가 국가반부패국의 독립성을 약화시키려 시도한 배경 중 하나였다”고 보도했다.

젤렌스키는 이날 저녁 연설에서 “부패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의 한 고위 관계자는 “국가반부패국과 다른 독립 기관들이 수집한 증거는 법정에서 검증받아야 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지난해 부패인식지수(CPI) 순위에서 우크라이나는 180개국 가운데 105위로 하위권을 기록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우크라이나가 전쟁 비용과 재건 사업을 위해 서방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추가 지원을 요청하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은 부패 문제를 척결해야 한다는 주요 파트너국들의 우려를 증폭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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